권대익
의학전문기자

등록 : 2018.02.12 20:00
수정 : 2018.02.13 10:37

[권준수의 마음의 窓] 성폭력 등 트라우마, 마음뿐 아니라 뇌에도 상처를 남긴다

등록 : 2018.02.12 20:00
수정 : 2018.02.13 10:37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여검사 폭로로 드러난 검찰 내 성희롱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재벌총수, 방송사 프로듀서, 경찰, 대형 로펌, 문단, 도의회 등에서 폭로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국내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법원 내부에서 자기 앞에서 성폭력이나 성희롱이 있다면 자신이 먼저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미퍼스트(#MeFirst)’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이들에게 공감을 표하겠다는 ‘위드유(#Withyou)’ 운동도 일고 있다.

그 동안 성폭력과 성희롱을 직장이나 학교에 신고해도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실제 피해자를 살펴보면 대부분 상하관계여서 신고해도 2차 피해를 당하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해 진술을 막기도 한다.

이젠 성폭력이 친고죄가 아니어서 당사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수사하긴 하지만 피해자가 진술을 꺼려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려면 상당한 부담과 용기가 필요하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폭로한 여검사도 8년간 고통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조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대학 내 성희롱 사건도 피해 학생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가해자인 스승을 고소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성폭력ㆍ재난ㆍ전쟁 등 강력한 외부 충격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마음의 상처뿐만 아니라 뇌에도 손상을 준다. 성폭력 피해자의 뇌 자기공명영상(MRI)를 찍어보면,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나 기억력과 관련된 해마를 손상해 부피가 줄고, 다른 뇌 부위와 연결에도 문제가 생긴다.

편도체나 해마가 손상되면 충격을 받을 때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공포심까지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성적인 학대를 당하면 더 많이 손상된다. 따라서 학교 내 성폭력ㆍ성희롱은 대단히 심각한 피해를 주고, 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트라우마가 심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될 수 있다. 트라우마로 우리 몸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연결되는 신경내분비계가 교란돼 불안ㆍ우울ㆍ악몽 등 각종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깜짝깜짝 놀라거나, 무감각해지고, 멍해지며, 트라우마를 일으킨 상황에 빠져 생활도 어려워진다.

이처럼 성폭력은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계속될 수 있어 조기 대처와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하면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이런 일이 자기 탓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기에 자책감이나 수치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조직이 나서서 해결해 주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미퍼스트’ 운동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주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 태도가 피해자가 직접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없애려면 결국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남녀가 동등하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남성도 이런 문제를 쉽게 생각해 별 죄책감 없이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뇌 발달과정에서 중요한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학생들이 교사나 교수들에게 당하는 성희롱이나 성폭행은 사제지간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피해자가 직접 나서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본인이 나서지 않아도 조직에서 적극 나서 학생을 보호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대학인권센터 조사에서도 피해자가 진술을 거부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본인 진술이 없더라도 성추행이나 성폭행 사실이 알려지면 해당 기관에서 정확히 상황을 파악해 적극 조치해야 이런 문제가 근절될 것이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남성의 자성,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모두 중요하다. 장난으로 연못에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조심해야 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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