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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히딩크감독 아니었으면 ‘70-70’도 없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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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히딩크감독 아니었으면 ‘70-70’도 없었을 것”

입력
2017.09.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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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이동국이 19일 전북 완주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왼쪽 가슴의 별 네 개를 가리키며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전북은 지금까지 네 번 우승을 했는데 올해 정상에 올라 별을 하나 더 추가하겠다는 의미다. 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전북 이동국이 19일 전북 완주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왼쪽 가슴의 별 네 개를 가리키며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전북은 지금까지 네 번 우승을 했는데 올해 정상에 올라 별을 하나 더 추가하겠다는 의미다. 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2002년 한ㆍ일월드컵을 앞두고 공격수 이동국(38ㆍ전북 현대)이 최종 명단에 포함될 것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고3때 이미 태극마크를 단 한국 축구의 간판 스트라이커 이동국을 거스 히딩크(71) 대표팀 감독은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수비가담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대표팀 최종명단발표 직전 코너킥 수비 훈련이 있었다. 이동국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어슬렁거렸다. 직전 미팅에서 히딩크 감독은 분명 “최전방 공격수도 코너킥 때 반드시 수비에 가담하라”며 위치까지 지정해줬다.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을 가리키며 옆에 있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게 버럭 화를 냈다. ‘저런 선수를 내가 어떻게 뽑겠느냐’는 의미였다. 결국 이동국은 제외됐다. 당시 대표팀 핵심 관계자는 “그 훈련이 이동국 탈락의 결정타였다”고 회고했다.

2002년 한ㆍ일월드컵을 앞둔 당시 이동국의 훈련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한ㆍ일월드컵을 앞둔 당시 이동국의 훈련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ㆍ일월드컵에서 폴란드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둔 뒤 두 손을 꼭 잡고 관중들 환호에 답례하는 히딩크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ㆍ일월드컵에서 폴란드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둔 뒤 두 손을 꼭 잡고 관중들 환호에 답례하는 히딩크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15년이 흘렀다.

한ㆍ일월드컵을 뛰지 못해 가슴 아파했던 청년 이동국은 만 서른여덟의 ‘백전노장’이 돼 한국 프로축구에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는 지난 17일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해 통산 197골 71도움의 금자탑을 쌓았다. 프로축구 34년 역사에서 ‘50(골)-50(도움)‘ 클럽 이상 가입자는 8명에 불과한데 이동국이 처음으로 ‘70-70’의 문을 열었다. 프로축구 최초 200골 고지에도 단 3골 남겨놓고 있다. 대기록 달성 이틀 뒤인 19일, 전북 완주군에 있는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이 기록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 탈락이 그의 축구 인생을 바꿔 놨다.

“전에는 골만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공격수의 수비를 중요시하는) 세계 축구 흐름도 외면했다. 하지만 월드컵 멤버에 떨어지니 다른 게 보이더라. 동료들이 나에게 패스 한 번 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한 경기 한 경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그 전의 내 플레이를 생각하니 너무 창피했다.”

이동국은 불혹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뛸 수 있는 것도 “히딩크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2002 월드컵을 뛰었다면 이런 강한 멘탈을 결코 갖지 못했을 거고 30대 초반에 진작 축구화를 벗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강희(58) 전북 감독은 “이동국이 한 차원 높은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고 했다. 도움 기록이 증명한다. ‘50-50’ 이상 기록한 선수는 대부분 프리킥, 코너킥을 전담하는 미드필더나 측면 공격수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인 이동국이 70개 넘는 도움을 올렸다는 건 그래서 더 대단하다. 최 감독은 “나는 요즘 이동국을 ‘축구 도사’라고 부른다. 수비수 등을 진 뒤 동료에게 찬스를 열어주는 능력은 완벽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정작 이동국은 “도움은 평범한 패스를 골로 만들어 준 좋은 동료 덕분”이라며 “솔직히 나는 도움보다 골에 더 욕심이 난다”며 ‘킬러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전북 현대 이동국이 17일 포항 스틸러스와 K리그 클래식 원정 경기에서 프로축구 최초로 '70-70' 클럽 가입에 성공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전북 현대 이동국이 17일 포항 스틸러스와 K리그 클래식 원정 경기에서 프로축구 최초로 '70-70' 클럽 가입에 성공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동국이 나이가 들며 생긴 또 다른 큰 변화 중 하나가 희생정신이다. 평생을 한국 최고 공격수로 살아온 그는 자신이 늘 팀의 주연이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달라졌다. 올 시즌 전북에서도 그는 붙박이 주전이 아니다. 외국인 공격수 에두(36), 후배 김신욱(29)과 경쟁하는 처지다. 하지만 한 번도 언짢은 내색을 한 적이 없다. 최 감독은 “천하의 이동국도 가만히 있는데 김신욱이나 에두가 불만을 드러낼 수 있겠느냐. 이게 바로 이동국 효과”라고 했다. 그는 얼마 전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의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에 힘을 보탰다. 이란전은 후반 42분, 우즈베키스탄전은 후반 33분 투입됐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표팀에서는 처음부터 비주전 팀에서 훈련해 내가 선발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밝게 웃고 장난쳤다. 후배들에게 ‘내가 아닌 동료들 빛나게 해주면 결국 팀이 빛나고 결국 자신이 빛난다’는 말을 해줬다. 이번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끈끈했다. 진짜 ‘원 팀’이 된 느낌이었다.”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들어가는 이동국. 타슈켄트=연합뉴스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들어가는 이동국. 타슈켄트=연합뉴스
이동국(왼쪽)이 몸을 사리지 않고 볼을 다투는 모습. 타슈켄트=연합뉴스
이동국(왼쪽)이 몸을 사리지 않고 볼을 다투는 모습. 타슈켄트=연합뉴스

이동국은 최근 한국 축구에 몰아친 ‘히딩크 영입론’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구단을 통해 “지금은 신태용(48) 감독에게 믿음을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가 일부 누리꾼에게 “자기를 탈락시킨 히딩크가 싫어서 그런다” “신태용 감독에게 잘 보여서 내년 월드컵 가려는 거냐”는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들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히딩크 감독을 싫어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을 뛴 선수들보다도 내가 훨씬 감사하는 마음이 클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현재 감독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지금 사령탑이라면 당연히 히딩크 감독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강조한 뒤 “(내년) 월드컵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 프로축구 최초로 '70(골)-70(도움)' 대기록을 세운 전북 이동국이 19일 전북 완주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한국 프로축구 최초로 '70(골)-70(도움)' 대기록을 세운 전북 이동국이 19일 전북 완주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이동국은 전북의 우승만 바라보고 있다. 전북은 9경기를 남겨 놓은 현재 승점 60으로 선두다. 2위 제주 유나이티드(승점 56)와는 6점 차. 그는 “지난 원정(17일)에서 포항 유니폼을 보니 별이 다섯 개(5회 우승)라 꽉 차 보이고 좋더라. 우리 유니폼에는 별이 네 개뿐인데 올해 꼭 하나 추가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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