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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구내식당 '채식메뉴' 자리 잡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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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구내식당 '채식메뉴' 자리 잡는 방법은

입력
2017.06.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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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당당하게 요구하자

고기반찬이 많게는 하나, 적게는 두 개씩 나오는 구내식당에서 채식인들은 선택권을 잃는다. 채식인들이 끊임없이 요구해 채식 메뉴가 바로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고기반찬이 많게는 하나, 적게는 두 개씩 나오는 구내식당에서 채식인들은 선택권을 잃는다. 채식인들이 끊임없이 요구해 채식 메뉴가 바로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채식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현실은 구내식당에서도 이어진다. 선택지가 비교적 많은 외부 식당과 달리 메뉴가 한정된 구내식당에서 고기 반찬이 나오면 채식인은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글쓴이가 근무하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반찬 서너 가지 중엔 고기 반찬이 늘 하나 이상 있다. 영양사에게 "왜 이렇게 고기가 자주 나오냐"고 물었다. 영양사는 "고기가 안 나오는 날은 학생들이 밥을 덜 먹어서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들은 쌀밥에 고깃국을 찾던 시대를 살 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어릴 때부터 고기에 익숙해져 그런지 고기를 더 많이 찾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니 채식 메뉴를 늘려 달라는 요청은 언감생심이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근하면 되겠지만, 그만한 정성이 없어 반찬 한두 가지만 놓고 밥을 먹을 때가 많다. 탄수화물 위주로 먹으니 영양이 부실해진다.

호주의 한 대학 기숙사 식당에선 채식하는 학생을 위한 도시락을 따로 제공한다. 집단 급식을 하는 곳에서 소수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게티이미지뱅크
호주의 한 대학 기숙사 식당에선 채식하는 학생을 위한 도시락을 따로 제공한다. 집단 급식을 하는 곳에서 소수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게티이미지뱅크

10여 년 전에 호주의 대학에 2개월 정도 머문 적이 있다. 일종의 기숙형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밥 시간보다 늦게 귀가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 식당의 냉장고엔 도시락 10개 남짓이 항상 마련돼 있었다. 이런 깨알 같은 배려보다도 더 눈길을 끈 것은 그 중 두어 개가 채식 도시락이라는 사실이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에 '베지‘(Vege)라고 씌어있던 게 기억난다. 사실 집단 급식을 하는 곳에서 소수를 위해 따로 신경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어떤 나라들엔 학교는 물론 군대에서도 채식자를 위한 메뉴가 있다. 미국은 전투 식량(MRE)도 채식주의자용이 있고, 우리와 가까운 대만도 군대에서 채식 메뉴가 제공되고 있다. 대만은 우리와 같은 분단 국가이면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있는데, 대만이 소수자를 배려하는 정신은 채식인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자까지 모두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구내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파는 대학이 몇 곳 있다. 서울대, 동국대, 삼육대다. 동국대와 삼육대는 종교적 이유 때문이니 순전히 이용자의 요구로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대 한 곳뿐이다. 서울대 학생 중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더 많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구성원이 많다 보니 채식인이 많을 뿐이다. 서울대는 학생뿐만 아니라 연구원과 직원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까지 캠퍼스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학교에서 직영하는 식당만 20곳에 이른다. 또 외국인 유학생이나 연구원, 교수들이 종교적인 이유에서 학교 측에 채식 메뉴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학교 감골식당 채식 뷔페 식단. 서울대와 동국대, 삼육대 구내식당에선 채식 메뉴를 제공한다. 서울대학교생활협동조합 홈페이지 캡처(왼쪽),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인스타그램 캡처
서울대학교 감골식당 채식 뷔페 식단. 서울대와 동국대, 삼육대 구내식당에선 채식 메뉴를 제공한다. 서울대학교생활협동조합 홈페이지 캡처(왼쪽),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인스타그램 캡처

물론 재학생들이 꾸준히 요구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학생들의 관심과 요구다. 채식 식당이 없는 대학 중에도 채식 동아리가 있는 곳이 꽤 있다고 한다. 채식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학교 측에 채식 식당을 요구하는 이익 단체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 수가 많지 않은 학교라면 채식에 관심이 있는 학생도 그리 많지 않을 테니, 학교 측에 채식 메뉴를 준비해 달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학생 중 채식인 비중이 작을 테니 학교 측도 예산이나 인력 문제로 난색을 보일 것이다.

채식을 요구하는 구성원이 많아지기 전에는 기존 메뉴에 채식 반찬을 한두 가지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 다. 예를 들어 순두부 팩을 준비해 두었다가 고기반찬 대신 제공하면 된다. 미국 여행 중 버거킹에서 채식 버거를 주문했더니 냉동된 채식 패티를 구워줬던 기억이 난다. 마찬가지로 구내식당에서도 냉동 채식 메뉴를 준비해뒀다가 제공하면 된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그런 의지를 끌어내는 것은 이용자들의 끊임없는 요구다.

최훈(강원대학교 교수, 철학,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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