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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복면가왕, 그 잔인한 우화

입력
2015.06.0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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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그 중에서도 대중가요)는 정말 노래 그 자체로만 평가를 받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려울 것 같다. 정말로 그렇다면, 가수의 얼굴을 가려버리는 노래경연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처음에 ‘히든 싱어(JTBC)’가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가수를 보이지 않게 숨겨둔 채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화려한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 현재 우리 가요계에 던지는 진지한 화두 같은 것이라고. ‘더보이스 코리아(m net)’도 마찬가지다. 노래하는 사람의 얼굴을 못 본 채 노래를 들을 때 편견 없이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복면가왕(MBC)’은 앞선 프로그램과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간다.

일단 여기선 출연자들이 가면을 쓰고 나와서 노래를 한다. 형식은 8명의 1대 1 토너먼트 대결이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가수 혹은 배우나 개그맨 등의 연예인이다. 출연자가 가면을 벗는 순간 모든 궁금증이 풀리면서 의외의 인물이 나와 깜짝 놀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프로그램은 장점보다 허점이 더 많아 보인다.

일단 복면 그 자체가 문제다. 가수가 아예 칸막이 속에 들어가버리면 모르겠는데,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나와서 노래를 하니까 노래에 집중이 잘 안 된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수가 열창하는 표정, 퍼포먼스, 얼굴이 대중가요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구나’ 하는 엉뚱한 깨달음을 얻었다.

1회전만 1시간 넘게 진행되는 것도 지나치게 지루하고 늘어진다. 어렵게 섭외했으니 8명의 출연자에게 충분히 분량을 뽑아줘야 한다는 각오일까. 그 동안 1회전은 보다가 중간에 자꾸 졸아서 제대로 본 적이 별로 없다. 또 가면 속 인물이 누군지 모른다는 게 의외로 초반 집중력을 많이 떨어뜨린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네티즌이 김연우라고 이미 결론을 내린 그 분)’ 정도의 엄청난 노래 실력이 나와야 그제서야 귀가 번쩍 뜨이는 정도랄까.

아마추어들이 나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 나도 모르게 출연자들의 스토리에 동화되고, 마치 내가 함께 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복면가왕’은 대부분 프로의 실력인데도 초반 감정이입이 어렵다. 어쩌면 이런 점이야말로 ‘공식‘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주는지 모른다.

대중가요는 ‘기술적으로 잘 만든 노래’, ‘뛰어난 테크닉의 가수’만 갖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케이팝 스타’에서 ‘악동 뮤지션’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어린 천재들 다운 발랄한 가사의 ‘다리 꼬지마’를 불렀을 때, ‘슈퍼스타 K’에서 곽진언이 저음으로 ‘당신만이’를 읊조리듯 불렀을 때의 충격파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복면가왕’ 출연자들의 노래보다 훨씬 더 컸다.

물론 ‘복면가왕’도 울컥, 하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좀 의외의 부분에서. 아이돌 가수들의 색다른 면을 확인했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복면가왕'에 출연해 감동을 줬던 가수 진주.
'복면가왕'에 출연해 감동을 줬던 가수 진주.

‘섹시 가수’로만 알려져 있던 지나가 임정희의 ‘나 돌아가’를 부르고, 가면을 벗으면서 눈물을 흘릴 때는 알 수 없는 안쓰러움 같은 게 느껴져서 같이 울었다. 지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첫 소절만 듣고 백지영 언니가 ‘지나 아니야?’ 라며 내 목소리를 알아줬을 때 그걸로 이미 난 승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2주 연속 우승까지 해낸 f(x)의 루나가 가면을 벗으면서 펑펑 눈물을 쏟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루나는 걸그룹 f(x)의 보컬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같은 발라드를 소화할 수 있는 진짜 가수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귀엽고 섹시한 이미지의 노래만 했던 걸스데이 소진도 마찬가지다. 소진은 마치 ‘이런 걸 해 보고 싶었다’고 시위를 하듯 가면을 쓴 채 윤미래의 파워 넘치는 랩을 했다. ‘아이돌이 이렇게 노래를 잘 했어?’라는 놀라움과 ‘아, 얘네들도 일단 유명해지기 위해서 하고 싶은 걸 저토록 참고 있었구나’라는 안쓰러움이 교차하며 마음이 움직였다고나 할까.

‘복면가왕’을 보면서 눈물이 나왔던 장면은 또 있었다. 최고의 가창력을 가졌는데도 ‘잊혀진 가수’가 된 진주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진주는 “MBC에 몇 년 만에 노래를 하러 오는지 모르겠다. 김형석 오빠(가요 프로듀서)를 보니 고2 때 처음 녹음했을 때가 떠오른다”며 펑펑 울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복면가왕’ 프로그램 안에서의 일일 뿐이다. 현실에서 지나는 계속 섹시 가수고, 루나는 계속 깜찍한 표정으로 외계어 같은 가사의 신곡을 부른다. 미안하지만 현실에선 진주는 여전히 ‘왕년의 가수’다. 이들이 개인적으로 무엇을 꿈꾸든, 대중은 잔인하게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찾는다. 잠시 이들의 이야기에 눈물 흘리고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 R&B 발라드를 부르길 원할까? 글쎄요. ‘복면가왕’은 어쩌면 ‘시장의 잔혹성’을 그린 우화 같은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복면가왕>

MBC 매주 일요일 오후 4시50분.

나이, 신분, 직종을 숨긴 스타들이 목소리만으로 실력을 뽐내는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복면가왕’에 나온 노래들은 왜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노래처럼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쓸지 못할까. 역시 화제성 부족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MBC는 그 동안 따로 음원을 공개하지 않다가 5월 31일 정오에 ‘복면가왕’의 음원을 공개했다.

2) ‘복면가왕’은 출연자의 노래 실력보다도 ‘정체 맞히기 스포일러 놀이’가 더 화제다. ‘황금락카 두 통 썼네’ 가면을 쓰고 2주 연속 우승을 했던 루나는 네일 아트 때문에 네티즌에게 정체를 미리 들켰다. 이후 출연자들은 가면에 장갑까지 끼고 출연하고 있다.

3) 김형석 프로듀서는 ‘복면가왕’에선 계속 헛다리만 짚는 ‘허당’ 캐릭터가 됐다. 김형석 프로듀서의 현재 직함이 한국예술원 실용음악과 학장이라는 게 반전. 요즘 어린 애들은 모르지? 이 오빠 진짜로 히트곡 제조기였단다.

방송 칼럼니스트

● '복면가왕' 화제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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