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6.12.23 13:35
수정 : 2016.12.23 16:14

백남기씨 딸 "피해자의 모습 규정 짓지 말라"

[사소한소다]<18>[인터뷰] 도라지씨의 2016년

등록 : 2016.12.23 13:35
수정 : 2016.12.23 16:14

올해 여성운동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사람은 백도라지씨다.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지난 9월 세상을 떠난 백남기씨의 딸이다.

여성신문 , ize

등 올해 여성계는 부친의 장례를 치른 뒤 진상 규명을 위해 의연하게 팔을 걷어 붙이고 정부와 싸움에 나선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에세이스트 김현진씨는 트위터에서 ‘나물님’으로 통하는 백도라지씨를 “피해를 당한 사람이 비참하게 일그러져 슬픔의 진정성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며 올해의 인물로 꼽았다.(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나물님’ )

이처럼 주목 받는 인물인 백도라지씨를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씨. 박소영 기자

주중엔 직장, 주말에 청와대 앞 1인시위… ‘일상’이 된 ‘투쟁’

아버지가 쓰러진 뒤 장녀인 백도라지씨의 일상은 요동쳤다. 지방과 외국에 거주하는 가족들을 대표해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버지를 돌보는 일부터 언론 인터뷰,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백남기대책위)’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 및 투쟁을 벌였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주중에 경기 파주에 있는 직장을 다니며 일요일마다 1시간씩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1년 가까이 투사로서의 삶과 일상의 삶을 동시에 산 그를 대단하게 바라봤다. 백씨는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때 비록 눈도 뜨시지 못했지만 계속 버티고 계시니까 저도 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백씨는 올 한 해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부검 영장을 집행하려는 경찰과 백남기 지킴이들 사이의 대치 마지막 날을 꼽았다. 그는 “경찰이 정한 시한 마지막 날에 매 시간마다 신부님 수녀님들과 미사를 드렸다”며 “많은 분들이 경찰이 물러나자 기뻐했는데 당연한 일을 기뻐하는 그 상황이 매우 이상했다”고 털어 놓았다.

백씨는 지난달 5일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최근 지인들과 연말 송년회도 했다.

지난 10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참가자들이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종로1가를 향해 행진하다 경찰병력에 가로막히자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고 백도라지씨와 가족들의 권력을 향한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백씨와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18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포함해 경찰 7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다. 올해 3월에는 국가와 관련 경찰관 6명을 대상으로 살수차 직사살수와 관련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어서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형사고발건은 아직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같은 날 있었던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벌써 2심 판결이 난 것과 대비된다. 손해배상청구 소송 역시 이제 3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백씨는 “많은 사람들이 정권을 상대로 한 싸움이 두렵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무섭지 않았다”며 “오히려 잘못한 그들이 우리 가족을 무서워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피해자를 범주화 하는 것이 싫었다”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가 지난 10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견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의 사망 진단서에 대해 반박하는 유가족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백씨가 주목받은 것은 국가 폭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에 열심히 나섰기 때문이었다. 트위터 활동을 열심히 하는 그는 트위터에서 번진 ‘#__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참가해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트위터에 남긴 거침없는 글 때문에 더러 ‘백남기씨 가족이면 언행을 신중하게 하라’는 등의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는다.

특히 그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피해자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고정관념이다. 지난 10월 동생 백민주화씨의 발리행을 둘러싼 논란 과 최근 민주화씨가 페이스북에 운동하는 사진을 게시하자 ‘상중인데 자제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에 대해 도라지씨는 “피해자 다워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은 이래야 한다, 피해자는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범주화”라며 “범주화 되는 것이 싫어서 트위터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한다”고 말했다.

언론도 범주화의 오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백씨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하면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며 “계속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데 약해 보이기 싫어서 그런 것인데 일일이 밝혀야 하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각보다 조리있게 말한다고 한 기자도 있었다”며 “피해자를 제대로 말도 못하고 불쌍하게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범주화”라고 주장했다.

그렇다 보니 백씨는 일상에서 평정을 찾아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 또한 피해자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저한테 왜 슬퍼하지 않냐고 물은 것처럼 슬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경우가 있을까 봐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경찰조직 근본변화 없으면 정권 바뀌어도 또다른 희생자 나올 수 있다”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집행 시한 마지막 날인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백남기투쟁위 회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코리아타임스

차벽과 물대포가 등장한 지난해 시위와 달리 올해 광화문 촛불 집회는 차벽이나 물대포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씨는 이를 경찰의 개혁과 무관한 “박근혜 정권의 레임덕 탓”이라고 잘라 말했다.

백씨는 지난 여름 이화여대 학생들의 미래라이프 사업 반대 시위 당시 경찰 1,600명이 학내에 투입된 사례를 들었다. 그는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경찰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불문율이었다”며 “경찰이 무리하게 학교에 들어간 것은 정권과 직접 관련된 일이라는 뜻”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는 “권력에 맹목적 충성을 다하는 경찰조직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가 폭력에 희생되는 시민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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