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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반기문과 친박(親朴)의 결별

입력
2016.1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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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 타고 반기문 변수 현실화

반기문+‘제3지대’ 연대 기대 솔솔

정치 할 거면 친박과 거래 끊어야

국내 정치에서 반기문은 여전히 미지수 ‘X’다. 이달 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면 곧 귀국할 그는 폭넓은 인기에 힘입어 진작부터 유력한 차기 대통령 감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아직도 대선에 나설지 말지, 나선다면 누구와 손을 잡을지 등이 모두 불확실하다. 외교관 시절부터 반 총장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능란한 화법으로 ‘기름장어(slippery eel)’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지난 3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까지도 특유의 ‘외교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반 총장은 “내년 1월 한국에 돌아가면 각계 지도자, 친구들과 조국에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원론만 되풀이했다. ‘최순실 사태’로 광화문에선 연일 백만 군중이 모이는 촛불시위가 이어졌지만, 정치 행보에 대한 그의 언급은 진전된 게 없었다. 그럼에도 반기문은 대통령 탄핵정국을 타고 숨가쁘게 돌아가는 최근 국내 정치판에서 이미 분명한 실체로 작용하고 있다.

요즘 반기문 변수를 가장 많이 의식하고 있는 정파는 새누리당 친박계인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자신의 사퇴 시점을 굳이 12월 21일로 늦춰 못 박았을 때, 내년 1월 중 전당대회를 통해 친박이 반기문을 새 대표로 옹립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파다했다. 비박을 포함한 세칭 ‘보수’ 차원의 ‘반기문 영웅 만들기’ 시나리오도 나돌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노태우가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6ㆍ29 선언’을 이끌어 냈다며 정치 입지를 다졌듯, 귀국한 반기문이 버티는 박 대통령을 설득해 사임을 이끌어 내는 모양을 연출한다는 스토리다.

반기문은 최순실 사태 이래 ‘문재인 대세론’을 단숨에 뒤흔들 태풍의 눈이다. 야권의 선두 대권주자인 문재인이 차기 대선 일정을 앞당기는 데 지나치게 열심인 배경도 반기문과의 본격 경쟁을 꺼리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주목되는 건 요즘 정치권의 ‘제3지대’ 결집 움직임에서도 반기문의 자장이 만만찮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 재건’을 선언한 김무성 등 새누리 비주류는 진작부터 분권형 개헌을 전제로 반기문과 안철수 등을 아우르는 조합을 모색해 왔다. 반면, 친문 일색의 민주당을 넘어 합리적 개혁세력 결집 의지를 보여온 김종인 역시 반기문과의 연대에 군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아예 반기문+김종인+김무성+안철수의 대연합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반기문의 정치적 자장은 인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책임ㆍ무능ㆍ부패의 오명으로 더럽혀진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성공한 관료로서 신뢰ㆍ유능ㆍ청렴이라는 DNA로 빛을 발하고 있다. 통일 국면의 기대감도 세계 최고 외교관인 반기문의 가치를 높이는 배경이다. 과거 헬무트 콜 독일 총리처럼, 많은 사람은 반기문이 국가 지도자로서 성공적 주변국 외교를 통해 통일의 문을 열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정치 기반이 취약한 반기문이 향후 누구와 손을 잡는 게 가장 바람직하느냐다. 가장 중요한 준거는 국민의 소망과 시대적 요청이다. 그걸 감안하면 일단 친박은 배제하는 게 옳다. 애써 반기문과의 연고를 주장하는 인사들이 없지 않지만, 친박은 이번 정권 내내 무소신과 무능, 패거리 정치밖에 보여준 게 없다. 보수는커녕, 정치세력으로서도 존재 가치가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새누리당 비주류도 비슷하다. 보수 재건을 내세우지만,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9년 가까이 철학도 없이 권력 안에 안주해 온 세력에 불과하다.

친박ㆍ친문을 넘어서면 반기문의 선택 폭은 보다 넓어진다. 국내 정치에선 여야가 모두 보수인 만큼, 김종인과 김무성, 안철수 등을 넘나들며 ‘합리적 보수’의 울타리를 만드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신 진짜 정치를 하겠다면, 반기문은 하루빨리 친박과의 결별부터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친박도 공연한 미련을 접고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 혼란을 줄이는 데 협조할 것이고, 대선 구도도 조기에 안정화할 것이다. 반기문 정치의 첫걸음이 선명한 선택이 되길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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