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승준 기자

등록 : 2017.10.08 16:48

한스 치머가 준 울림, ‘라라랜드’가 준 혼란

7일 잠실벌에서 열린 영화 음악 콘서트 ‘극과 극’

등록 : 2017.10.08 16:48

영화 음악 거장인 한스 치머는 7일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열어 한국 관객들을 자신의 '영화 음악 박물관'으로 인도했다. 그가 아시아에서 공연을 열기는 처음이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1982년 영화 ‘달빛 아래서’로 음악 작업을 시작해 미국 그래미 어워즈에서 7번이나 영화 음악으로 상을 탔으면서 30여 년 동안 공연하지 않고 어떻게 참았을까.

2014년이 돼서야 영국에서 첫 공연을 열며 “라이브 공연을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두려웠다”는 건 엄살이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 경기장.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한스 치머(60)는 드럼 소리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영화 ‘다크나이트’ OST 메들리를 선보일 때 오른팔을 수 차례 흔들며 곡의 격정을 지휘했다.

영화 음악의 거장은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피아노에서 자리를 옮겨 기타를 둘러매고는 연주로 곡 사이를 활기차게 누빌 때는 정열의 로커가 따로 없었다. 웅장한 음악으로 유명한 치머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했다. 그는 로맨스 영화 ‘트루 로맨스’ 테마곡 무대에서 멕시코 출신 스태프의 깜짝 결혼 프러포즈 이벤트까지 열어주며 공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안녕하세요, 한스 치머입니다.”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치머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이날 잠실벌에서 공연을 열고 한국 관객들과 정겹게 만났다.

한스 치머의 내한 공연은 웅장했고, 기품이 넘쳤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치머는 익살이 넘쳤지만, 그의 공연은 웅장했고 기품이 넘쳤다. 그는 2시간 동안 시공을 초월한 음악을 선보이며 자신이 120여 편의 작품으로 세운 ‘영화 음악 박물관’으로 초대했다. 치머는 목관 악기인 우드 윈드로 영화 ‘라이언킹’ OST 메들리를 들려주며 제3세계 땅의 소리를 긷더니, ‘인터스텔라’ 메들리에선 신시사이저로 우주의 광활함을 몽환적으로 표현하며 영화 음악의 만화경을 펼쳤다. 전자첼로를 연주하는 티나 구오와 인도 전통 타악기 타블라를 치는 샤트남 싱 람고트라 등 다양한 색을 지닌 19인조 밴드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일군 다채로운 멜로디의 밭이었다.

배우 이병헌이 7일 한스 치머 내한 공연에 깜작 등장해 배우 히스 레저를 추모하고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 무대에서였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치머는 ‘다크나이트’ OST 메들리 무대를 배우 이병헌의 히스 레저 추모 낭독으로 꾸려 곡에 대한 몰입을 돕기도 했다. 영화에서 조커 역을 맡은 레저는 촬영 직후 200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 치머에게도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치머가 한국 관객들에게 ‘다크나이트’ 관련 이야기를 친숙하게 들려주기 위해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인연을 맺은 이병헌을 섭외해 준비한 기획이었다는 게 공연기획사 프라이빗커브와 이병헌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의 설명이다. 치머는 공연에서 영화 관련 영상을 단 한 편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정교하고 깊은 연주로 멜로디를 꿰 영화에서 준 감동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영화 '라라랜드' 음악 감독인 저스틴 허위츠(가운데)가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올림픽경기장 주 경기장에서 오케스트라와 재즈 밴드의 협연을 지휘하며 영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프라이빗커브제공

치머의 내한은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페스티벌 2017’(‘슬라슬라’) 일환으로 이뤄졌다. 치머의 공연엔 빈틈이 없었지만, 페스티벌 기획과 진행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겼다. 치머에 앞서 무대에 선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의 첫 내한 무대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영화 음악을 직접 녹음한 재즈 연주자 7명과 국내 오케스트라가 모였지만, 영화 흐름에 맞춰 연주하다 보니 라이브의 묘미가 크게 반감됐다. 영화 삽입곡이 없는 부분에선 연주가 멈추고 영화만 상영돼 협연의 감동이 뚝뚝 끊겼다. 이런 모습이 영화 상영 130여분 동안 도돌이표처럼 반복돼 공연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시배스천(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에마 스톤)가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갈등을 확인하는 장면에선 즉흥 연주 소리가 너무 커 영화를 삼켰다. 영화와 라이브 연주가 물과 기름처럼 충돌해 극에도 공연에도 집중할 수 없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슬라슬라’는 허위츠와 치머의 공연으로만 꾸려졌는데, 두 무대 전환에 85분이 소요돼 긴 공연 공백으로 무료함을 주기도 했다. ‘슬라슬라’엔 1만5,000여 명이 다녀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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