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기자

등록 : 2017.03.19 11:01
수정 : 2017.03.19 11:01

네덜란드 최연소 당대표의 ‘포퓰리즘과 싸우는 법’

등록 : 2017.03.19 11:01
수정 : 2017.03.19 11:01

15일 네덜란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녹색좌파당의 예시 클라버(왼쪽 두번째) 대표가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선거의 밤’ 행사 중 자축의 의미로 부인 요레인과 입을 맞추고 있다. EPA 연합뉴스

두세개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소매, 청바지, 그리고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

최근 캐나다에서 한창 인기몰이 중인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연상시키는 모습의 이 네덜란드 청년에게 지난 15일(현지시간) 총선 직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주인공은 올해 31세의 네덜란드 예시 클라버 녹색좌파당 대표다. 24세로 의회에 입성해 2015년 5월 네덜란드 역대 최연소 당 대표가 된 클라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극우 자유당(PVV)을 저지한 구원주, ‘예시아’(Jessiahㆍ메시아의 변형)로 불리며 유럽 좌파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녹색좌파당은 이날 기존 의석의 3배가 넘는 14석을 확보해 자유당의 기세를 보란 듯이 꺾었다. 전체 의석(150석) 중 약 10분의 1이지만 집권 자유민주당(VVDㆍ33석)의 주요 연정 파트너로 떠올라 ‘역사적 승리’라고 자축했다. 선거 직후 암스테르담 ‘선거의 밤’ 행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 속 등장한 클라버 대표는 “우리는 포퓰리즘을 멈춰 세울 수 있습니다”라며 극우 세력에 맞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풀어놓았다.

1. 대중을 속이지 마라

클라버 대표는 이날 연단에 올라 “유럽 각지의 나의 좌파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 절대 대중을 속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당신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위해 똑바로 나아가라. 난민에, 그리고 유럽인들에 기울자.”(Stand for your principles. Be straight. Be pro-refugee. Be pro-European)라며 녹색좌파당의 노선을 재확인했다. 또한 극우 진영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의 것’이라는 수사에 맞서 “네덜란드는 자유와 관용 위에 세워진 나라이고, 나는 내 나라를 되찾고 싶다”고 지적했다.

클라버 대표의 이러한 원칙론은 네덜란드 유권자들의 자부심을 저격했다. 모로코 출신의 아버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를 둔 그가 제시한 ‘관용’은 네덜란드적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 유권자들에게 명쾌한 답이 됐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 동성결혼, 기호용 대마초를 합법화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확고한 네덜란드인들은 고공 지지율로 녹색좌파당에 답했다. 그가 당 대표가 된 이래 등록 당원만 7,000여명 늘었다.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녹색좌파당의 아인트호벤 '번개 만남'(meetup)행사에서 동료와 주먹을 맞댄 채 인사를 나누는 예시 클라버 대표. 클라버 페이스북 캡처

2. 희망을 버리지 마라

극우 진영의 ‘두려움의 정치’에는 희망으로 맞섰다.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쓰레기 모로코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거리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슬람 사원 폐쇄 및 쿠란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을 끊임없이 부각했다.

클라버 대표는 달랐다. 지난해 9월 대학 도시 레이든에서 가졌던 ‘번개 만남’ 행사에서 그는 “희망과 변화, 공감의 운동(movement of empathy)”이란 구호로 행사장을 콘서트장으로 뒤바꿔놨다. 클라버는 이어 “경제 성장, 시장, 작은 국가의 ‘삼위일체’ 신화는 끝났다, 그 자리에 공감, 경제적 평등, 자연 보호를 채우자”며 경제 침체와 불평등에 지친 청년 세대를 적극 위로했다.

3. 협력은 선택 아닌 필수다

녹색당의 이상을 강조한다 해서 일절의 타협 없는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 의회는 득표율 0.67%만 넘으면 의석 배정이 가능한 비례대표제여서 매 선거마다 정당들 간 연정 구성이 이뤄진다. 클라버 대표는 ‘다른 정당들과 연정을 꾸리는 것을 우려하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연대는 협력의 자연적인 결과”라고 답했다. 그는 “내 목표는 ‘중도좌파’ 연립정권”이라며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지만 이를 위한 길은 50개도 넘는다”고 밝혔다.

4. 아빠의 마음으로

자유당 빌더르스 대표의 ‘혐오 레토릭’에 대해 대부분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진 않았다”고 말하는 클라버 대표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만은 동요했다. 올해 각 한 살, 세 살이 된 두 아들을 둔 클라버 대표는 “첫째가 태어난 지 몇 주 되지 않았을 때 그(빌더르스)가 ‘쓰레기 모로코인을 치우자’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클라버는 당시 “나를 말하는지, 혹은 내 아들을 말하는지, 대체 어디까지 가려나 싶었다. 막 아빠가 된 순간이어서 다소 감정적이었다”고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빌더르스 대표는 당시 발언 후 모욕ㆍ증오선동 혐의로 기소, 일부 유죄 선고를 받았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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