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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6월 민주주의 문턱에서

입력
2015.06.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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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작고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3년 작고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름으로 가는 6월은 우리 민주주의가 그 문턱을 넘어 선 시기로 기억된다. 30년이 채 안 된 역사의 무대에 피 흘린 자국이 아직 선명하지만 이제 지금 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당연한 것이 됐다. 태국이나 베네수엘라에서 중산층이 민주주의에 대한 매력을 잃는 역풍도 있지만, 실증적 연구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000달러를 넘으면 독재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물질적 풍요가 일정 수준에 달하면 민주주의는 그 스스로 강화한다는 것인데, 그런 논리가 아니라도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든 깨져버릴 유리병 같던 시기는 지나온 듯하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안착된 곳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위기 탈피에 서툴다는 것이다. 위기가 다가와도 민주주의에서는 그런 것쯤 헤쳐나갈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의 트랩 때문이다. 오랜 경험의 다른 국가들이 지도자를 찾고, 지도력을 구하는 것도 그런 위험과 트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지도자 입장에서 그런 위기는 성공과 실패 어느 쪽이 됐든 기회인 경우가 많다. 신념이 굳은 지도자라면 그 신념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된다.

대처 혁명을 이끈 마거릿 대처가 지지율이 최하위였을 때 아르헨티나 군부가 영국령 포클랜드를 점령했다. 영국의 존재감을 확고히 할 기회였으나 항공모함으로도 열흘이 걸리는 곳에 군대를 보내는 것에 내각에서도 미친 짓이란 얘기가 나왔다. 국민지지도 25%이던 지도자는 결국 스스로의 용기와 결단으로 전쟁을 시작했고 국민에게 승리를 안겼다. 승리 뒤에 대처는, 대처로부터 영국을 구해내겠다던 광부노조의 파업이란 또 다른 위기에서 이번에는 무기가 아닌 법으로 맞섰다. 그것이 그를 마녀로 불리게 했지만 결국 그의 가장 큰 업적이 된 영국을 치유하고 바꿔 놓은 대처주의를 이끌어 냈다.

대처와 달리 위기 때 한번의 실패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은 지도자도 있다. 조지 W 부시는 주지사 시절 보여준 초당적 리더십으로 갈라진 미국 정치를 이끌 걸로 기대됐다. 나중에 네오콘들의 전진배치로 비판 받은 조각조차 처음에는 아주 인상적이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부시가 테러란 새로운 위기에서 이라크 전쟁의 탑건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의 신념은 자기기만의 확신으로, 열정은 맹목으로 변했고, 그는 거짓을 사실로 자신을 설득한 인물쯤으로 추락했다.

한국에서 부시의 경우를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의 친구 MB만 해도 그렇다. 전용차로를 달리는 버스나 고가가 없어진 서울풍경은 전적으로 서울시장 출신 MB 덕분이다. 장명수 전 본사 주필은 대선에 나서는 그에게 서울시장이나 한번 더 하라고 충고했는데, 그 말을 들었더라면 서울시가 참 많이 달라졌을 법하다. 하지만 불도저의 이미지로 지도자가 된 그는 미숙함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역풍에 시달려야 했다. 위기를 벗기 위한 토목과 개발의 광풍은 지금도 발목을 잡아 검찰이 그 내역을 추적하는 상황이 됐다. 경남기업 사건도 그 끝자락 즈음에 있을 것이다.

성공한 대처 같은 지도자를 찾는 일은 어떨까. 대처가 부딪혔던 것과 같은, 기회가 될 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그랬듯이 반복되는 위기에서 드러나는 서투름은 문명의 한복판에서 빚어지는 야만과도 같다. 재미난 것은 부시에게 패한 앨 고어의 집에서 선거 당일 나무가 쓰러져 문을 막은 일이다. 이를 피해 앞문이 아니라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고어에게서, 선거에서 이기고 집계에서 진 이유를 찾는 미국인들이 아직도 많다. 위기에 맞서지 않고 패배의 뒷문을 선택한 이는 지도자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태규 사회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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