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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문재인ㆍ반기문 테마주는 허상일까

입력
2017.0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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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작년 12월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유엔본부=신화 연합뉴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작년 12월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유엔본부=신화 연합뉴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가장 뜨거운 ‘박근혜 테마주’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운영하는 EG였다. 음습한 정치테마주의 생리를 믿는 투자자들에게, 이름도 생소한 ‘산화철’을 만드는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박근혜와 박지만의 관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동생의 회사에 유무형의 도움을 줄 테고 결국 EG가 훨씬 번창할 테니 남보다 한 발 앞서 투자하는 게 이득일 거란 심리였다. 전형적인 정치테마주의 형성 논리다.

하지만 결국 EG는 짭짤한 테마주가 되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가 권력을 틀어쥐었음에도 EG의 주가는 대선 전초전이 한창이던 2012년 초 8만7,900원을 피크로 내리막길을 거듭, 지금은 1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박 대통령이 박지만, 또 EG에 기대만큼 신경을 써 주지 않는다는 걸 투자자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회장이 박 대통령의 조카사위란 이유로 함께 테마를 이뤘던 대유신소재(현 대유플러스) 등 대유그룹 계열사들도 이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히 말하는 ‘테마주 허망론’은 진실인가도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았다. 진짜 박근혜 테마주는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삼성(20.7%) SK(19.3%) 롯데(8.8%)…. 박 대통령과 뭔가 주고 받았다는 의심을 받는 재벌기업 계열사들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코스피 전체(5.3%)보다 훨씬 많이 늘었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착착 진행했고, 그 때문인지 최순실씨 일가에 각별한 도움을 줬던 삼성의 대표주 삼성전자는 작년에만 무려 43%나 올랐다. 2012년초 100만원 언저리던 주가가 요즘은 180만원을 넘어섰으니 EG의 내리막길과는 정반대 길을 걸은 셈이다. 실현되진 않았지만 만약 최순실씨의 비덱 더블루케이 등이 상장회사였다면? 아마 알음알음 투자한 사람들은 대박을 쳤을 것이다.

그랬다. 테마주에 혹했던 개미들이 어리석었던 건 실체도 없는 테마주 열풍에 휩쓸린 게 아니라, 종목을 잘못 찍었던 거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ㆍ사정당국의 정치테마주 단속이 다시 한창이다. 당국은 내는 자료마다 “테마주 투자는 근거가 없고, 돈을 날리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설사 해당기업과 인연이 있다 한들, 유력 인물이 절대 사사로운 도움은 주지 않을 거란 ‘순진한’ 전제가 깔린 말이다. 그런데 어쩌나. 그 당국을 지휘하는 분들 스스로, 테마주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진리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말았으니.

어김없이 박스피(박스+코스피)를 벗어나지 못했던 작년 한 해 유가증권시장에서 가장 많이 오른 종목 10개 가운데 무려 6개는 정치테마주였다. 반기문 테마주로 꼽히는 성문전자(임원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막역한 사이) 우선주는 무려 336.89%나 뛰어오르며 2위에 자리했다. 문재인 테마주 고려산업(상임고문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고교 동문)도 224.57% 급등하며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 우량기업 주가의 평균이라 할 코스피가 작년 3.3% 올랐으니, 이들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200~300배의 성과라도 냈던 걸까.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지금의 반기문, 문재인 테마주가 계속 뜰지, 그 기업들이 진짜 잘 풀릴 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이 분들이 제 입으로 “친한 기업을 챙기겠다” 할 리 만무하고, 앞서도 봤든 진짜 테마주는 따로 있을 테니 이들도 아마 EG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안타깝게도, 당국의 테마주 단속은 앞으로도 테마주를 막지 못할 것이다. 후진적인 정경유착이 근절되지 않는 한, 테마주를 유행시키는 건 한탕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아니라 반기문, 문재인 그 분들일 테니. 과거 권력을 거머쥔 이들마다 처음엔 하나같이 “검은 거래는 절대 없을 것”이라 외쳤기에, 그 분들에게 또 묻는다. 반기문ㆍ문재인 테마주는 정말 허상인가.

김용식 경제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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