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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정적(靜寂)] 분노(憤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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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정적(靜寂)] 분노(憤怒)

입력
2018.02.12 15:2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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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가평에서 학교가 있는 관악구로 차를 몰고 가려면 출근시간을 피해야 한다. 출근길 88 고속도로는 거북이다. 며칠 전 나는 불가피하게 오전 10시 강의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그날따라 교통체증이 더욱 심했다. 동작대교를 지나 중앙대 언덕길을 올라 갈 참이었다. 그런데 차 한 대가 다가와 앞부분을 들이 밀었다. 나는 좌회전 신호를 놓치고 다시 신호를 기다려야 했다.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그 운전자 때문에 제시간에 강의를 시작하지 못했다.

강의가 끝난 뒤 내 분노를 응시해 보았다. 분노는 일을 해결하기 보다는 망친다. 분노는 상대방에게도 전염된다. 모든 사람이 화나면, 일이 엉망이 된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분노가 삶의 강력한 연료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자신이 성공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분노는 근시안적이다. 분노라는 연료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독성을 뿜어내, 인생이라는 자동차의 엔진을 망가뜨릴 것이다. 1967년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흑인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차별하고 학대하는 백인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움은 내가 지니고 다니기에 너무 무겁다.” 분노도 마찬가지다. 분노는 우리가 버려야 할 가장 독성이 강한 감정이다.

분노의 근원을 따져 보았더니, 다른 운전자들의 운전습관에 대한 스스로의 과대평가였다. 운전자들은 대개 이기적으로 운전한다. 집을 떠나기 전, 이를 미리 염두에 두었다면 화가 나지 않거나 덜 났을지 모른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세네카(BC 4년~ AD 65년)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 정치가, 극작가였다. 로마의 식민지 히스파니아(스페인) 도시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5세 때 로마로 이주했다. 세네카는 어릴 때 심한 결핵을 앓아 일생을 허약하게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기원후 37년에 최고 권력기관인 ‘로마 원로원’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그의 정치적 수완과 수사학적 웅변을 시기해 세네카에게 ‘자살’을 명했다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중병을 앓고 있던 그를 불쌍히 여겨 살려둔다. 칼리굴라의 뒤를 이어 41년에 황제가 된 클라디우스에게도 세네카는 눈엣가시였다. 클라디우스의 아내 메살리나는 칼리굴라의 여동생 율리아 리빌라를 제거하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세네카와 리빌라가 간통을 범했다는 소문이 돌고, 로마 원로원에도 고소 사건으로 접수된다. 로마 원로원은 세네카에서 사형을 선고하였지만, 클라디우스 황제는 다 죽어가는 세네카를 죽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그를 코르시카 섬으로 8년 동안 유배시킨다.

클라디우스 황제는 세네카를 코르시카섬 최북단 캡 코르세(Cap Corse)라는 곳에 있는 루비라는 마을로 보냈다. 그는 가파른 해안 위의 한 망루에 감금되었다. 이곳은 1,2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주변은 바위뿐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로마에서 유배 온 세네카를 푸대접하였다. 부와 명성을 누리다가 지옥과 같은 섬에 감금된 세나카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그곳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41년에 쓰기 시작한 ‘분노에 관하여(De Ira)’라는 책이 그렇게 태어났다. 세네카가 오늘날까지 스토아 철학자로, 작가로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신의 선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응시하였다. 분노가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세네카는 말한다. “분노보다 우리를 마비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힘을 가지고 모든 것을 왜곡시킵니다. 만일 분노가 성공하면, 세상에서 가장 건방집니다. 만일 분노가 실패하면 세상에서 가장 비상식적입니다. 분노는 자신이 패했을 때도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운명의 여신이 그의 적을 물리쳐도, 분노는 스스로 이를 갈고 있습니다”(‘분노에 관하여’ 3권1장5단락). 세네카는 유배 온 다음 해인 42년에 어머니 헬비아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고백했다. “나는 최상의 환경에 있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실제로 내 주위환경은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맡겨진 과중한 일들이 없어, 내 영혼을 증진하기 위한 여유가 많습니다. 저는 공부가 즐겁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며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묵상합니다.” 스토아철학자들은 매일 아침 묵상하였다. 그 날 자신에게 최악의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이것을 라틴어로 ‘프리메티타치오 말로움’ 즉 ‘최악의 일들을 미리 명상하기’다. 세네카는 분노를 오히려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분노의 대상은 분노를 극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신뿐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미리 예상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가?” 나는 그러지 못한 나에게 분노한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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