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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터지지만…” 심판의 아내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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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터지지만…” 심판의 아내로 사는 법

입력
2015.10.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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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심판이 되다] 9. 심판 ‘가족’ 체육대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심판의 아내’로 산 지 올해로 6년째를 맞고 있는 김효진(34)씨는 요즘도 주말만 되면 마음이 복잡하다. 사내연애로 만나 2010년 결혼한 남편 주철규(40) 심판의 ‘경기장 외출’때문이다.

연애 할 때는 심판 뛰는 남자친구가 꽤 괜찮아 보였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에 다니면서도 주말엔 넥타이를 풀고 심판 휘장을 다는 그의 모습이 멋있고 믿음직스러웠다. “건강한 취미잖아요. 본인이 좋아하는 일 찾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죠. 경기장에 쫓아갔다가 경기 마치고 데이트 한 날도 많았어요.”

남편인 주 씨에게도 심판 활동은 새로운 활력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 한국-스위스전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심판이 돼 보겠다’고 마음 먹고는 귀국 직후 심판강습회에 등록해 덜컥 붙었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의 응원도 힘이 됐고, 꾸준한 활동으로 1급 심판까지 오르며 남다른 성취감도 맛봤다.

하지만 결혼 후 태어난 두 아이가 점점 커가자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함께 커갔다. 아내 김 씨의 걱정과 서운함 역시 스멀스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애들도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는데 주말에 심판 보러 간다고 짐 싸는 모습 보면 속 터지죠. 도핑검사관 자격증도 있어서 심판 배정이 안될 땐 도핑 검사하러 나가더라고요.(웃음)”

주철규 심판과 그의 첫째 아들 라온 군.
주철규 심판과 그의 첫째 아들 라온 군.

그러나 하소연도 잠시. 이내 남편에 대한 걱정들이 서운함을 앞질렀다. 김 씨는 “매일 밤 10시~11시는 돼야 퇴근하는 데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해 걱정 되는 게 사실”이라며 “나이 탓인지 힘들어 하는 게 보인다. 평소보다 조금 더 잘 챙겨먹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인 주 씨 역시 “아내와 자녀들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며 “걱정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었다.

인터넷 쇼핑몰 ‘백호마트’를 운영중인 2급 심판 장석규(35)씨 부부에게도 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오는 31일 있을 큰아들 백호의 돌잡이 때 ‘휘슬’을 올리려 했던 장씨의 뜻이 아내 정윤숙(32) 씨의 강력 저지에 무산됐다. 정 씨는 쇼핑몰을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터라 주말 심판 활동에 대한 섭섭함은 덜하지만 심판을 마치고 집에만 오면 “아프다”는 남편이 몹시 안쓰럽단다.

“한 번은 경기장엘 따라갔는데 수 많은 사람들 중 심판을 응원하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더라고요. 지도자나 학부모들이 대놓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가족 입장에서 속이 상하는 건 당연하죠.”장 씨의 아내가 아들 돌잡이 상에서 휘슬을 뺀 또 하나의 이유다.

이 같은 아내의 말에 장 씨는 “응원하는 이들이 없어도 아내 한 명만 응원해 준다면 수백 응원단이 부럽지 않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장석규 심판 가족
장석규 심판 가족

25일 서울 효창종합운동장에서는 ‘2015 서울 심판 가족 체육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2회째인 이 행사의 주인공은 ‘심판’이 아닌 ‘심판의 가족’이다. 주말마다 심판 보러 짐 싸 들고 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가슴 부여잡는 가족들을 초대해 함께 즐기고 유대를 형성하는 데 의미를 둔 행사다. 이날 행사에선 김덕성(48)-김대성(19) 심판, 장광호(41)-장주한(16) 심판 등 ‘부자(父子) 심판’들의 참여도 눈길을 끌었다. 고교시절 축구선수 생활을 그만 둔 뒤 자발적으로 심판에 입문한 아들과 주말마다 경기장을 향한다는 김덕성 씨 댁 사정은 앞선 부부들과 조금 다르다.

“우리 아내는 아주 좋아하지. 주말에 웬수 둘이 안 보이거든. 하하. ‘운동하라’잔소리 안 해도 되고, 용돈은 심판 수당으로 충당하니 기특한 모양이야!”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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