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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죽어간다, 또 다른 복지사각 ‘나홀로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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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죽어간다, 또 다른 복지사각 ‘나홀로 가구’

입력
2017.0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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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 사건 3주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박모씨와 두 딸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서울 송파구 지하 셋방에서 번개탄을 피워 동반자살한 게 2014년 2월26일, 꼭 3년 전이었다. 질병을 앓고 있었고 수입도 없었지만, 세 모녀는 사회보장체계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 후 법도, 제도도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송파 세 모녀에 쏠렸던 큰 사회적 관심도 이젠 이들을 비껴가고 있다.

일용직 60대, 월세 넉달 못 내다…

다리 다쳐 일 못하는 날 많아져

자녀는 20여년간 연락 끊긴 상태

휴대폰에 저장된 전호번호 4개뿐

“월세를 계속 못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방에 있는 짐은 다 버려주세요.”

19일 오전 서울 신림동 관악산 등산로에서 60대 남성 김모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20여 년간 자녀들과 연락을 끊고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 온 그는 세상을 등지기 며칠 전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저렇게 얘기했다. “추운 데 어딜 가시나, 날씨가 풀릴 때까지라도 계속 머무르시라”고 집주인이 답했지만 김씨는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가난으로 인한 미안함이 담긴 침묵, 그게 그의 유언이었다.

26일 서울 관악경찰서 등에 따르면 김씨는 경제적 곤란으로 넉 달치 월세를 미룬 상태였다. 관악구에 있는 4㎡짜리 ‘쪽방’이 그가 지난해 10월부터 보증금 50만원을 내고 살던 곳. 김씨는 월세 15만원을 내지 못하는 동안 집주인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다. 이웃들은 김씨가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다”면서 방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전했다. 말 없이 혼자 술을 마셨고, 가끔은 복도에 들릴 정도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크게 외치기도 했다.

김씨가 감당했을 고독의 깊이는 그가 숨진 자리에서 경찰이 확보한 휴대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집주인과 건설현장 동료, 식당 전화번호 등 4개에 불과했다. 가족 연락처는 아예 없었다. 사망 후 몇 일이 지나도록 이웃들은 김씨의 사망 소식조차 알지 못했다. 통성명을 하지 않아 그의 이름이나 고향, 나이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20일과 23일 기자가 찾아간 그의 방에는 텅 빈 밥솥과 음식물이 말라붙은 냄비, 이부자리와 옷가지 20여 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김씨에게는 정부의 손길도 닿지 않았다. 물론 정부에 긴급복지지원을 요청했다면 생활비 30만원, 의료비 100만원 상당을 받을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김씨는 어떠한 지원도 요청하지 않았다. 김씨의 방이 주민센터에서 걸어서 5분(200m) 거리였지만,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관악구는 지난해 7월부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제도를 시행하며 빈곤 위기가정을 찾아 나서고 있지만, 1만 가구에 이르는 동 전체 가구를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긴급복지지원 대상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65세가 되면 전수 방문에 나서고 있지만 65세 미만 독거노인까지 모두 파악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61세로 생을 마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19일 생활고로 목을 맨 채 발견된 서울 관악구 김모씨 방에 음식물이 말라 붙은 식기가 놓여 있다. 정반석 기자
19일 생활고로 목을 맨 채 발견된 서울 관악구 김모씨 방에 음식물이 말라 붙은 식기가 놓여 있다. 정반석 기자

미혼 50대, 실직 7개월 버티다…

다섯 달 월세 못낸 채 생계곤란

주변에 안 알리고 목숨 끊어

구청 “직접 찾아왔다면 긴급지원”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낡은 다세대 주택이 빼곡히 늘어선 골목의 한 2층집 반지하 단칸방에서 김모(50)씨가 싱크대 위 가스배관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건 지난 2일. 다섯 달치 월세 150만원을 내지 못해 집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그가 남긴 건 친형에게 쓴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석 줄짜리 유서 한 장이 전부였다.

지난 22일 오후, 기자가 찾아간 김씨의 집은 다른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새 싱크대를 들이고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허름한 반지하에서 곰팡이가 핀 낡은 싱크대가 내어져 나왔다.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이 없었던 김씨는 홀로 그 방에서 1년 넘게 살았다. 집주인에 따르면, 김씨는 제조업 기술직으로 일하다 지난해 초 퇴사한 후 학원버스 기사 등을 전전하다 그 해 7월부터는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서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로 결론 내렸다.

김씨는 자신의 생활고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지방에 살고 있는 친형과도 연락이 드물었고, 이웃과도 왕래가 없었다. 그가 비극적인 선택을 한 당일 오전에도 통장이 인구주택총조사를 위해 수 차례 방문을 두드렸지만 답이 없었다고 한다.

정부는 김씨가 처한 어려움을 몰랐다. 김씨의 집과 주민센터는 200m 가량, 걸어서 5분 거리다. 주민센터는 사회복지제도를 주민들에게 안내하는 관문이지만, 김씨가 주민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 기록은 없다. 주민센터 복지팀이 직접 김씨를 찾아간 일도 없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실직 상태인 가구주는 재산 상황 등을 고려하면 긴급복지지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김씨가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왔다면 도움을 줄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장애인이나 노인 등 취약계층과 달리 김씨처럼 근로능력이 있는 경우엔 복지 대상자라는 걸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각지대를 발굴하기 위한 시스템에도 김씨의 이름은 없었다. 복지부는 단전, 단수, 사회보험료 체납, 고용위기 등의 23종 정보를 13개 외부기관으로부터 받아 복지대상자를 추려 각 지자체에 통보하는 시범사업을 2015년말부터 하고 있다. 김씨는 전기료와 가스비를 몇 달 간 체납했고, 실직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각종 정보마다 가중 점수를 부여해 대상자를 가리는데 점수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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