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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이제 촛불을 넘어야

입력
2016.11.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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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첫 번째 양초에 불이 붙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명의 중학생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인터넷을 통해 소식이 퍼지면서 추모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었다. 지난날의 미군 범죄가 들추어지고 미군기지 문제가 재조명됐다. 결코 평등하다고 할 수 없는 주한미군지위협정도 논란거리였다. 11월이 되자 촛불은 서울시청 앞을 가득 채웠다. 자생적인 움직임이었다. 집회를 주도하는 단체도, 뚜렷한 이념이나 방향도 없었다.

촛불은 단지 하나의 감정을 공유했다. 김동성 선수의 실격패에 분노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안정환 선수의 미국전 세레모니에 환호했던 것과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반미라는 단어로는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그 아래엔 전쟁의 불안이 깔려있었다. 당시 미국은 9ㆍ11 테러를 명분으로 세계를 전쟁에 끌어들이던 차였다. 한국도 전쟁비용을 지원하거나 부대를 파견해야 하는 처지였다.

추모의 촛불은 곧 아프간 파병 반대로, 이라크 파병 반대로, 전쟁 반대로 이어졌다. 촛불집회 내내 참가자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 쪽으로 행진했다. 누가 먼저 행진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돌이켜보건대 행진의 이유는 하나다. 미국대사관이 서울시청과 광화문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집회시위법에 따라 외국 외교기관 앞에서 집회를 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앞을 지나가며 항의 의사를 전달할 수는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화문 방향의 행진은 본래 미국대사관에 보이기 위한, 미국에 대한 항의가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했던 사학법 반대 집회를 제외하면 2008년까지 모든 촛불집회가 그랬다. 미국산 쌀 수입에 반대하고 한미 FTA에 반대하면서, 세종로를 따라 미국 대사관 앞으로 향했다.

이런 집회 방식은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정점을 찍었다. 거의 석 달 동안 매일같이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인파가 몰렸다. 비록 광우병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불안감도 개입되어 있었지만, 본질은 외교와 검역의 문제를 대통령 독단으로 처리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그 집회는 한국사회 안에 이만큼의 저항적 힘이 있다는 걸 모두에게 깨우쳤다. 촛불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된 학생운동을 대체했다. 문제는 그 집회가 이후 모든 대중운동의 모델이 되면서 집회란 으레 시청광장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하는 것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민란이나 궐기 등 거창한 이름을 붙이며 전투적 움직임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광화문을 넘어 청와대까지 나아가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동의하지 않았다. 단순한 비폭력 강박 때문이 아니라, 이걸로는 어림없다는 인식 때문은 아니었을까. 촛불집회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늘 가능성에서 멈췄다. 이것도 돌이켜본다면 이유는 하나다. 나는 촛불을 운동권의 후예가 아닌 월드컵 군중의 후예로 본다. 지난 10여 년간 그토록 많은 인원이 나섰음에도, 우리는 이제 이런 모델이 현실정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도 대규모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시민들의 요구는 이전과 다르다. 우리는 미국의 전쟁을,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상화를 원한다. 되풀이되는 부정을 막기 위한 구조의 재편을 원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민집회는 이전의 촛불집회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권력을 도둑질한 이들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고 촛불은 실체를 가진 힘이 없다. 집회를 같은 장소에서 반복할 이유는 없다.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 더 많은 동료 시민들을 만나야 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학교와 일터에서, 주거단지와 쇼핑 공간에서, 종교시설에서 춤추는 클럽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숨 쉬는 모든 곳에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퍼트려야 한다. 이제 촛불도 넘어서야 할 때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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