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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법부의 독립, 대법원장의 역할

입력
2017.09.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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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법원장 임명을 둘러싸고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대법원장 후보자의 지명 과정에 나타난 파격과 그 이후 청문회까지 이어진 코드 인사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 과정은 연일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표결 결과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제는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대결 양상으로 펼쳐지면서 정작 중요한 새 대법원장에게 주어질 사법부 수장으로서 역할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시기나 대법원장의 역할은 중요했겠으나, 이번에 새롭게 임명되는 대법원장은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현안에 대한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될 것이다.

첫 번째는 대법원에서 진행되는 상고심 제도의 개선이다. 현재와 같이 12명의 대법관이 1년에 5만 건 이상 접수되는 상고 사건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설사 대법관들이 능력 있는 재판연구관 판사들의 도움을 받아 헌신적으로 일을 함으로써 그 사건들을 다 처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회적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숙고 심의가 가능할 리 없다. 결국 상고제도 개선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고허가제, 상고법원의 설치, 대법관의 대폭적인 증원 등과 같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해서 추진해야 할 것인데, 각 대안이 가지고 있는 헌법적 문제들과 정치적 민감성 등을 고려하면 어느 시기보다 새 대법원장의 능력을 갖춘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두 번째는 지금 시기에 필요한 사법부 독립을 다시 확보하는 일이다. 이론적으로 사법부 독립은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 법원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문제는 재판의 독립, 특히 여론 등 사회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최근의 탄핵 정국 등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대한민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들이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대중들로 하여금 사법부의 재판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서 개인으로서 법관에 대한 유무형의 압력을 통해 사법적 판단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경향에까지 이르고 있다.

물론 사법부의 독립이 법관의 판단이 시대의 흐름이나 국민 대다수의 보편적인 법 감정에 반하는 것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법적 판단이 그 시기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반영하게 되면 다수에 의한 소수의 핍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역사적 깨달음에 사법부 독립의 헌법적 정당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법관 임용절차를 포함한 법관 인사제도의 개선이다. 과거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제도 하에서는 적어도 정량적 지표의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우수한 젊은 법률가들이 법관으로 임용되었고, 그것이 법원조직 전체의 안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조 일원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로스쿨 제도로 법률가 양성 시스템이 바뀐 환경에서는 더 이상 그와 같은 법관 임용방식이 가능하지 않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10여 년의 법률가 경력을 갖춘 지원자들 중에서 어떤 덕목을 갖춘 사람을 법관으로 임용할 것인지, 그렇게 임용된 법관에게 재판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기대할 것인지에 관해 깊은 제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들이 재판과정에서 표현하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을 사법제도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철학적 고민도 수반되어야 한다.

새 대법원장은 또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등 전임 대법원장이 경험해보지 않았던 무겁고 새로운 역할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임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새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절차에서 사법부 수장으로서 요구되는 이러한 현안들에 대한 입장과 그 문제들을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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