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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눈 내리는 깡촌

입력
2017.01.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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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깡촌마을에서 공고를 졸업한 아버지는 고향의 시멘트공장에 다녔다. 아버지의 친구들도 다 비슷해서 그곳의 청년들은 먼 데로 떠날 일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눈길을 주었던 아가씨와 연애를 계속했고 그녀들도 딱히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았으므로 대단한 일이 없는 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남쪽 도시에 철강공장이 생기면서 청년들은 수런거렸다. 월급도 훨씬 많았고 사택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부터 하나씩 하나씩 남쪽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온통 고향 친구들이었다. 우리 골목만 해도 모조리 동창생들이었다. 그 골목에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아무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강원도 음식, 그러니까 가자미식해라든가 강냉이죽 같은 걸 나눠먹었고 나는 여태 감자밥이라면 질색이다. 형편이 나아지면서 아버지들은 고향에 남았던 남동생을 불러 취직을 시켰고 같은 부서 후배에게 여동생을 소개시켰다. 아들도 딸도 다 내려 보냈지만 자식에게 짐 지우기 싫었던 노모들은 혼자 남아 옥수수며 말린 생선들을 바리바리 싸 보냈다. 남쪽 도시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걸핏하면 눈이 펑펑 쏟아지던 깡촌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우아우아, 눈이 땡그래졌던 아이들은 눈 따위 금세 잊었다. 깡촌으로 한 번 갈라치면 완행버스를 여덟 시간이나 타야 했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길이 좋아져 차를 몰고 가면 세 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노모가 없는 고향은 아버지에게도 잊힌 모양이다. 하긴 떠나온 지 40년도 훨씬 넘었으니. 그래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던 깡촌의 눈을 아버지는 아직 잊지 않았겠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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