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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효 끝난 워크아웃 제도, C등급 기업들 줄줄이 법정관리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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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효 끝난 워크아웃 제도, C등급 기업들 줄줄이 법정관리 우려

입력
2018.07.02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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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촉법 재연장에 여당도 반대 

 기업 구조조정 추진 근거 잃어 

 정부, 임시 협약 추진하지만 

 법적 강제성 없어 실효 의문 

 자율협약ㆍ법정관리도 있지만 

 채권단 100% 동의 필요하고 

 회생절차 중 정상영업 힘들어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기업 구조조정의 대표적 수단 중 하나인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됐다.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이 지난달 말 일몰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금융권 약속에 기반한 ‘임시 협약’을 만들어 급한 불은 끄겠다는 계획이지만, 여당조차 기촉법 연장을 반대하고 있어 워크아웃 제도가 사실상 소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조조정이 급한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일 금융당국과 국회 등에 따르면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촉법이 지난달 말 법적 시효(2년6개월)가 끝나 효력을 상실했다. 앞서 정부는 국회에 기촉법의 효력을 연장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파행으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8월 C등급 기업 비상

당장 비상이 걸린 곳은 내달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기업이다. 시중 은행들은 매년 금융권 신용공여액(대출+보증)이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을 상대로 부실 정도를 따지는 신용평가를 진행한다. 신용위험등급은 A~D등급으로 나뉘는데, 이 때 C와 D등급을 받은 기업들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C등급 기업은 결과를 통보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해야 하고, 사실상 퇴출 대상인 D등급 기업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절차를 밟게 된다. 지난해의 경우 25개 대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돼, 이중 13곳(C등급)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C등급 기업이 반드시 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채권은행으로부터 대출금 회수를 당하지 않으려면 정상화 계획을 세우고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기업은 채권단의 75% 동의를 얻어 만기 연장이나 추가 대출 등의 금융지원을 받아 경영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다. 특히 워크아웃은 기촉법에 따라 진행되는 구조조정 절차여서 워크아웃 개시가 결정되면 모든 금융채권자가 기업 지원안을 따라야만 한다. 채권단 중 한 곳이 지원안이 마음에 안 든다고 기업에 빌린 돈을 갚으라고 혼자 요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2009~2016년 워크아웃의 누적 성공률은 54.4%로, 법정관리의 누적 성공률(45.6%)을 웃돌았다.

그러나 내달 발표되는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게 될 기업은 워크아웃 제도가 사라진 터라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정부는 일단 혼란을 막기 위해 모든 채권단을 불러 모아 ‘임시 구조조정 협약’을 만들 계획이다. 기촉법 내용을 그대로 담아 채권단의 75% 찬성표만 얻으면 기업이 워크아웃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정부는 2일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관계기관간 대책 회의도 연다. 관건은 은행, 저축은행, 보험, 신용보증기금, 신탁업자 등 얼마나 많은 채권단을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몰에 대비해 그간 설득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채권단이 임시 협약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임시 협약은 채권단 중 일부가 구조조정 지원안에 반대해 중간에 발을 빼도 참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특히 사채권자들은 자금 회수가 목적인 만큼 이를 따르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협약이라 한계가 있다”며 “목표는 기촉법이 재입법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재연장 반대

기촉법은 2001년 한시법 형태로 만들어졌다. 외환위기 당시 시장 구조조정 필요성이 커지면서 ‘기업구조조정 협약’ 등을 만들었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어 효과가 떨어지자 제정됐다. 기촉법은 2005년 시효 만료로 사라졌지만 2007년 한시법으로 다시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연장됐다. 그 때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채권은행을 관할하는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에 개입할 여지가 커 시장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 2015년 말 시효를 앞둔 때에도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기촉법 재연장에 반대했다 정부의 끈질긴 설득에 마지 못해 2년 6개월 연장에 찬성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이 기촉법 연장에 반대해 현재로선 재연장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A 민주당 의원 보좌관은 “기촉법 연장으로 생기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며 “재연장될 확률은 거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B 민주당 의원 보좌관도 “2년여 전 정부가 기촉법을 대신할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연장을 해줬는데 정부는 그 동안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며 “시장 구조조정 중심으로 가되 나머지는 법정관리의 근거가 되는 통합도산법을 보완해 법정관리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맞다”고 밝혔다.

만약 국회에서 기촉법 연장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임시 협약’만 남는 경우 8월 C등급을 받는 기업들은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워크아웃이 안 되면 다른 방법은 자율협약과 법정관리밖에 없다. 그러나 자율협약은 채권단 100% 동의가 필요하다. 법정관리는 법원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불러모아 채권1채무 관계를 조정한 뒤 회생 여부를 결정 짓는 만큼 회생철자 중 정상 영업이 어렵다. 수주기업은 법정관리로 가면 기존 수주까지 취소될 수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구조조정 선택지가 다양할수록 좋은데 법정관리 중심으로 가자는 것은 기업 사정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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