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응답 없는 北, 애타는 南

알림

응답 없는 北, 애타는 南

입력
2017.07.24 18:13
0 0

남북회담 시한 27일까지 사흘 남아

北, 대남 비방에만 열 올리며 무시

고조되는 대화 무용론 “경솔했다”

“첫 단추라 신중한 것” 반론도

내심 기대했던 이산가족은 허탈감

안개가 자욱한 24일 아침 북한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에서 바라본 주체탑과 대동강. 평양=AP 연합뉴스
안개가 자욱한 24일 아침 북한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에서 바라본 주체탑과 대동강. 평양=AP 연합뉴스

정부가 남북 회담의 시한으로 설정한 27일이 사흘 남았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 측 제의에 회신커녕 침묵으로 일관하며 오히려 대남 비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실현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는 애가 타는 모양새다. 다만 북한의 전략적 판단이 아직 끝나지 않아 좀더 기다려야 한다는 반론도 동시에 나온다.

24일 국방부와 통일부에 따르면, 정부가 17일 제안한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에 대해 1주일이 지나도록 북한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21일로 제시한 군사회담에 북한이 응하지 않자 답신 기한을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까지 늦췄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은 내달 1일에 열자고 제안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일단 27일까지는 차분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뭘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북한은 태도 변화는 고사하고 여전히 남측 비난에 몰두하고 있다. 20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대결할 기도를 드러내면서 관계개선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성토한 데 이어, 24일에는 노동신문에 ‘패전의 교훈을 망각한 자들의 무분별한 도발광기’라는 글을 싣고 정전협정 이후 60여년간 한미가 벌인 연합 군사훈련 등을 ‘침략책동’으로 규정하면서 “우리를 압살하려는 미제와 괴뢰호전광들의 야망에는 변함이 없고 변한 게 있다면 더 포악하고 교활해진 것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관영 매체들을 동원해 최근 우리 외교ㆍ안보 부처 당국자들의 북한 인권 관련 발언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발사에 대한 국회의 규탄 결의안 채택을 연일 문제삼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섣부른 대북 정세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 경솔하게 회담을 제의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미국ㆍ일본 등 동맹국과의 불협화음만 불거졌다는 것이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애초 자신을 핵 보유국으로 여기고 남측은 대화 상대로 보지 않는 북한이 대화 제의에 호응해 올 가능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무력 도발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외주업자에 불과한 우리와의 대화에 북한이 매력을 느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미 핵과 ICBM을 지렛대로 미국과 담판 짓겠다는 로드맵을 짠 북한에게는 도발을 중단하게 만드는 대화가 오히려 장애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조차 경제가 안정적 궤도에 오른 북한이 더 이상 남측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반면 북한이 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득실 계산이 끝나지 않았거나 남측의 선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한 모두 대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당국간 불신의 골이 깊어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신중한 모양새인 데다 지난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군사당국회담 제안을 남측이 차버린 데 대한 북한의 불편한 심기도 작용했을 것”이라며 “북한에 거부할 의사가 명확했다면 공식 기구를 통한 성명이나 문재인 정부를 직접 거명한 비판이 진작 나왔을 텐데 아직 그렇지 않은 만큼 27일 정부가 긴장 완화나 적대 행위 중단과 관련해 어떤 선제 조치를 하는지 봐가면서 북한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내달 중순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연구소장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코 앞에 있는 탓에 지금 반응을 보여도 어차피 다시 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해 남측이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려보는 듯하다”고 했다.

해법도 엇갈린다. “지금은 교범대로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힘을 토대로 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박휘락 원장)이라는 게 보수 진영 주장이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등 모험을 걸어서라도 북한을 대화로 유인해야 한다”(김동엽 교수)는 요구도 제기된다. 압박만 가하면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리라는 인식도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북한 붕괴론’처럼 안이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고유환 소장은 “북 위협에 대한 미 조야ㆍ국민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 개연성도 그만큼 커진 게 사실”이라며 “북한을 상대로 상황을 설명하고, 경고도 하기 위한 대화가 긴요해졌다”고 말했다.

북한이 군사회담 제의에 응하지 않는다면 적십자회담도 정부가 제시한 내달 1일에 이뤄지기는 난망이다. 통일부ㆍ대한적십자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3만1,200명으로, 이 중 생존자는 6만513명이다. 상봉을 신청했지만 끝내 북녘의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이산가족은 7만687명으로, 전체 신청자의 절반이 넘는 53.9%에 달한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6월 한 달 동안만 상봉 신청자 중 258명이 숨졌다. 생존자 연령대는 ▦90세 이상이 19.6%(1만1,866명) ▦80∼89세 43.0%(2만5,991명) ▦70∼79세 22.9%(1만3,873명) ▦60∼69세 8.4%(5,081명) ▦59세 이하 6.1%(3천702명)로 80세 이상이 62.6%에 이른다. 애타는 건 정부만이 아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