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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컹물컹 슬라임에 푹 빠진 美 초등생들

입력
2017.03.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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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슬라임’을 만들고 있다. 사진ㆍParents.com(바네사 스톨로프 제공)
미국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슬라임’을 만들고 있다. 사진ㆍParents.com(바네사 스톨로프 제공)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인도계 미국인 발라고팔씨 가족. 초등학교 6학년 가우리 발라코발(12)양과 엄마 니마씨의 말싸움이 최근 부쩍 늘었다.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성적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화학자가 된 것처럼 올해 초부터 가우리양이 부엌에 액체 풀, 남성용 면도 크림, 붕사, 물, 식용색소 등을 갖다 놓고 ‘슬라임(slime)’이라는 점액성 물질을 만들면서부터다.

가우리양의 실험은 일주일에 서너 번이나 이뤄진다. 그 때마다 슬라임 제조공장이 된 부엌은 끈적이 투성이로 변한다. 직장맘인 니마씨는 가뜩이나 바쁜 부엌 일이 더욱 힘들어져 “제발 그만두라”고 호통치지만, 가우리양은 “나만의 슬라임이 없으면 학교에서 따돌림 당한다”고 맞선다.

초등학교 6학년인 가우리 발라고팔양이 자신이 만든 슬라임의 탄력성을 자랑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가우리 발라고팔양이 자신이 만든 슬라임의 탄력성을 자랑하고 있다.

미 전역 초등학교 여학생 사이에 슬라임이 대유행이다. 미국의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 200여만명이 온통 슬라임에 빠져 있다. 버지니아주 비엔나의 웨스트브라이어 초등학교 애밀리아(12)양은 “같은 반 17명 여학생 중 15명이 슬라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슬라임에 손을 파묻을 때의 부드러운 감촉, 연필로 꾹꾹 누를 때의 눈을 밟는 듯한 소리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미국 어른들은 딸과 조카들이 물컹물컹, 끈적끈적한 이 물질을 왜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른 눈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소녀들은 슬라임 품질 평가에 엄격하다. 한국의 고무찰흙과 밀가루 반죽 중간 정도의 점성을 지녔는데,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밀려 나오면서도 끈적거리지 않아야 최고 품질로 대접받는다. 식용 색소와 반짝이를 적절히 배합해 색깔까지 예쁘면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슬라임 제조 원료. 문구용 액체 풀, 붕사, 식용색소 등이다. 사진ㆍParents.com(바네사 스톨로프 제공)
슬라임 제조 원료. 문구용 액체 풀, 붕사, 식용색소 등이다. 사진ㆍParents.com(바네사 스톨로프 제공)

엄마와 이모들이 패션경쟁을 하듯, 소녀들은 더 예쁘고 품질 좋은 슬라임을 갖기 위해 온종일 궁리한다. 가우리양처럼 직접 제조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지만, ‘명품 비법을 안다’고 소문난 일부 여학생들에게는 친구들의 주문이 쇄도한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1등급 슬라임은 30g에 50센트(570원)~1달러(1,150원)에 팔린다.

미 언론은 슬라임 열풍을 200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현재 미국 어린이들의 속마음을 잘 드러낸 사회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장경쟁 원리에 익숙하면서도 개성 추구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업체가 대량 제조한 ‘슬라임’을 싼 값에 내놓았지만, 자신만의 것을 선호하는 소녀들의 외면으로 실패했다”고 소개했다. 대신 슬라임 원료인 문구용 액체 풀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12%(300만달러)가 늘었고, 인스타그램에는 관련 사진이 200만건 이상 등록됐다고 덧붙였다.

니마씨는 “더 좋은 걸 만들려고 요모조모 궁리하면, 우리 딸의 과학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도 저절로 높아질 거라는 생각에 작은 일탈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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