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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아기 옷을 빠는 오후

입력
2015.09.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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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면 아빠가 된다. 지천명을 목전에 두고 첫아이를 갖게 된 늦깎이 ‘쌩’ 초보아빠가 되는 것이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놀라 눈이 떠진다. 국내외 여러 지역을 떠돌던 ‘노총각’ 시절, 나름 홀로 삶의 참고독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 주장하던 내가 아이 아빠가 되다니 가슴이 철렁거린다.

그러나 놀란 가슴쯤 아랑곳 하지 않고 온몸과 마음으로 딸바보가 될 준비까지 흡족하게 마친 상황이다. 출산을 코앞에 둔 지금에 이르러보니 최근 들어 달라진 내 일상의 변화가 새삼 놀랍기만 하다. 혼자가 아닌 둘, 그리고 이제 셋으로 채워질 가족이라는 둥지의 형태와 양식이 모두 새로이 다듬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내를 따라 난생 처음으로 산부인과 병원에 갔을 때는 어찌나 쑥스럽던지 괜스레 주눅이 들기도 했다. 대부분 20, 30대로 보이는 청년 남편들에 비해 염색으로 흰머리를 숨긴 내 나이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던 탓이다. 짓궂은 지인들로부터 손자 볼 나이라고 받은 농담까지 가벼이 흘려 보내지 못하던 그 시기를 넘겨 지금은 병원 다니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나로서는 엄청난 변화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감사하게도 신생아 관련된 선물도 자주 받게 된다.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다양한 용품들에 눈이 번쩍 뜨이고, 어떻게 쓰는 것인지 일일이 사용방법을 익혀보는데 은근 재미가 따라 붙는다. 아기띠를 맨 모습이 보기 좋다는 아내의 칭찬에 입을 헤 벌리고 웃어주며 아양을 떨게 된 것은 물론, 지나가는 유모차를 보며 그 쓰임새와 디자인을 살피며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떠는 일도 어느새 평범한 일상의 대화 중 하나가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가 본 ‘베이비 페어’ 역시 신세계나 다름이 없었다. 탐나는 물건들이 어찌나 많은지, 아무데서나 침을 흘리며 지갑을 열고 싶은 욕구가 발동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아내의 적절한 제지가 없었다면 아마 몇 달 동안 생활고를 겪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온종일 손빨래를 했다. 수십 장의 천기저귀를 비롯해 배냇저고리, 속싸개, 겉싸개, 양말 등의 아기옷과 인형, 장난감들까지 주변 지인들로부터 물려받은 온갖 유아용품들과 일일이 대면(?)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평소 빨래를 즐기긴 했지만, 이렇게 아기옷만 가득 베란다에 내다 걸 날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내를 새로이 바라보는 재미가 생겨났다. 거실 한 쪽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잘 마른 아기옷과 기저귀들을 정성스레 개는 모습도, 중고물품 사이트를 뒤지다가 괜찮은 아기용품을 싸게 구입했다며 헤벌레 웃는 얼굴도 너무 새롭기만 하다. 특히 볼록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수시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는 맛은 더없이 쏠쏠하다. 뱃속 아기와의 대화라는 아내의 ‘주장’은 당연히 반박할 여지가 없고, 한발자국 떨어져 두 여인(?)의 대화를 바라보는 재미가 남다른 기쁨과 행복의 여운으로 맴돈다.

사실 특별하다고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지니고 있을 평범한 삶의 흐름이지 않은가. 다만 여러 이유들로 인해 이런 일상을 지키기 어려워진 세상살이 가운데서, 내게 찾아온 소중한 순간들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고 싶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나뿐만이 아니라 이 땅 위 모든 이들의 평범한 일상의 가치가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다면 이 또한 더없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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