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남편을 원망하기만 했는데, 심리 부검을 통해 남편이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남편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14년 1월 심명자(50)씨는 남편을 잃었다. 유난히 추웠던 날 남편은 아파트 앞 야산에서 목을 멘 채 발견됐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죽음이었다. 슬플 새도 없이 심씨는 두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처자식을 두고 떠난 남편이 원망스럽고 무책임하게만 느껴졌다. “처음에는 배신감뿐이었어요. 죽을 힘 다하면 못 살 것도 없다는데, 그 때만 힘들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의 죽음에 화가 많이 났어요.”
그러던 심씨는 지난해 보건복지부ㆍ중앙심리부검센터가 자살자 121명 유가족에 대해 진행한 심리부검에 참여하게 됐다. 심리부검은 유가족의 면담을 바탕으로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고인의 삶을 재구성해 자살 원인을 추정하는 것이다. 면담에서는 고인의 경제상태ㆍ가족 및 부부관계ㆍ건강상태ㆍ자살 징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심씨는 이를 통해 “남편의 죽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26일 서울 중구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에서 열린 ‘2015 심리부검 결과보고회’에서 말했다. 전업투자자였던 심씨의 남편은 24시간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갈 때만 얼굴을 내비쳤다. 가족과 대화가 많은 편도 아니었다. 심씨는 “힘들다는 표현을 한 번씩 했는데 그 때마다 짜증을 낸 게 후회된다”며 “방 안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을 이해하게 됐고 이후 화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자살은 다른 사망과 달리 유가족들에게 심한 죄책감과 상처를 남긴다. 전문가들은 심리부검이 유가족의 정신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선규 중앙심리부검센터 사무국장(임상심리학박사)은 “면담을 통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막연한 죄책감과 자기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해 심리부검을 받은 유가족의 88%는 면담 후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날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유가족 심리부검 결과 자살자 121명의 88.4%에 달하는 107명이 우울증, 중독장애 등 정신질환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중 정신건강 문제로 치료나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는 54.2%(58명)에 그쳤다. 자살자의 절반 정도가 문제를 방치한 셈이다.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한 이는 15%(16명)에 불과했다. 또한 일기장에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고 쓰거나 체중이 급격히 줄거나 외모관리에 무신경해지는 등 자살 징후를 보인 자살자가 93.4%에 달했다. 하지만 유가족 10명 중 8명(81%)은 자살자의 사망 전에 경고신호를 알아채지 못해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사망 전 자살자들이 내과와 같은 동네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1차 의료기관에서 위험군을 걸러낼 수 있는 방안을 고안 중”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전문가와 3시간 가량 대화로 이뤄지는 심리부검은 전화(02-555-1095~6) 또는 홈페이지(www.psyauto.or.kr)를 통해 신청 후 진행할 수 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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