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논설위원

등록 : 2017.08.29 04:40

[이충재칼럼] ‘덫’에 빠진 이재용의 선택은

등록 : 2017.08.29 04:40

20여 년 삼성 발목 잡아온 경영권 승계 작업

편법ㆍ불법 승계 논란 벗어나려면 정면돌파뿐

증여세 납부, 재단출연, 전문경영체제 거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성 오너들이 사법 심판대에 오른 적은 여러 번이지만 유형은 크게 두 종류다. 비자금 조성을 통한 정치자금 제공과 편법을 동원한 경영권 승계다.주로 과거의 관행적 성격이 짙은 정치자금은 대기업 공통의 문제여서 상대적으로 비난의 소지가 적다.

하지만 경영권 세습은 문제가 다르다. 개인 소유가 아닌 주식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려면 상응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를 어기면 자본주의 기본질서가 밑동부터 흔들린다. 왜곡된 부의 축적으로 인한 국민의 상실감뿐 아니라 국가경제에 끼치는 피해도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61억원이 종잣돈이 됐다. 증여세를 납부하고 남은 44억원으로 삼성 계열사 전체에 대한 경영권 확보에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불거진 게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전환사채 헐값 인수 논란이다. 삼성 계열사들이 매입을 포기한 당일 이 부회장이 거액의 인수대금 납입을 완료해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된다는 것은 삼성 지배구조 확보의 첩경이나 다름없었다.

정상적인 방식이 아닌 지분 인수는 뒤탈을 낳았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건은 대법원에서 6 대 5 한 표차로 무죄 판결이 났지만 함께 문제가 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건은 유죄가 확정됐다. 책임은 이건희 회장이 졌지만 이 부회장에게는 ‘편법 상속’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2014년 이 회장의 갑작스런 와병은 삼성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내는 요인이 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그 첫 단계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두 회사 합병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을 가진 삼성물산이 지배구조 정점에 올라섰다.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이 부회장인지라 삼성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런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법원이 이 부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의 실재를 인정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삼성이 친분관계가 전혀 없는 최순실씨 딸의 승마 지원에 거액을 지원할 이유를 달리 찾기 어렵다는 게 그 출발점이다. 만일 삼성이 다른 대기업처럼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을 내는 데 그쳤다면 법원이 밝힌 대로 이 부회장은 무죄가 됐을 것이다. “이 부회장은 아무 것도 몰랐다”는 식의 잘못된 재판 전략을 동원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회장 와병 후 3년간 이 부회장이 해온 역할과 존재가치를 무위로 만든 것은 발목을 잡는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이 부회장의 공백은 기업뿐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우려를 가져오는 게 사실이다. 유례 없는 상황 속에서 헤쳐 나가야 할 역경과 도전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 이런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두 회사 합병 이후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려던 구상은 어려워졌다. 정부에 즐비한 재벌개혁론자들과 국민 여론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현실적으론 경영권 승계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물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겠지만 이 회장 지분을 정식으로 상속세를 내고 물려받아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증여세 납부와 공익재단 지분 출연 병행을 거론하기도 한다. 공익재단을 통한 오너의 지배력 강화 논란이 변수이긴 하지만 명분과 실리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할 만하다. 그룹경영과는 선을 긋고 자신의 본업인 삼성전자 경영에 매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경우 삼성그룹은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체제를 맞게 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판결이 “한국 정치경제학의 터닝 포인트를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 선택에 따라 수십 년간 걸림돌이 돼온 경영권 승계라는 덫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스스로 달라지길 기대한다. 분노가 감동으로 바뀌는 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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