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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시리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아파트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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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시리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아파트 스릴러

입력
2018.08.17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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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완슨. 푸른숲 제공
피터 스완슨. 푸른숲 제공

여름은 소설의 계절이라지만, 아무 소설이나 여름과 궁합이 맞는 건 아니다. 여름 용 소설의 무난한 요건은 이렇다. 읽는 진도가 죽죽 나가야 한다. ‘성찰’보단 ‘오락’이 주 기능이어야 한다. 으스스하면 더 좋다. 장편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가 딱 그런 소설이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이름 난 미국 늦깎이 작가 피터 스완슨이 썼다. 장르는 소프트 범죄심리 스릴러쯤. 관음증, 데이트 폭력, 스토킹, 치정, 여성혐오, 연쇄살인, 시체 훼손까지 나오지만, 피로 칠갑하진 않는다.

미국 보스턴의 3층짜리 호화 아파트에 주인공 케이트가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파트는 케이트의 육촌 코빈의 집이다. 영국 런던에 사는 케이트와 코빈은 6개월간 집을 바꿔 살기로 했다. 둘은 평생 얼굴을 본 적 없는 사이. 케이트는 5년 전 애인에게 잔혹한 이별 폭력을 당한 뒤 중증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 과거에서 벗어나려 보스턴에 왔다.

케이트가 도착한 첫날 밤 옆집 여자 오드리가 살해당한다. 두 남자가 나타난다. 맞은편 아파트 312호에서 303호의 오드리를 오랫동안 훔쳐 봤다는 앨런과 오드리를 잊지 못해 주위를 맴도는 중이었다는 옛 애인 잭. 둘 다 변태 같다. 앨런의 관찰에 따르면, 코빈과 오드리는 연인이었다. 코빈은 그러나 연인 관계를 부인한다. 집 바꿔 살기를 제안한 것도 코빈이었다. 수상하다. 냄새가 나는 건 앨런, 잭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스포일러. 코빈은 학창시절 친구 헨리와 함께 우발적 살인을 저질렀다. 코빈, 헨리 사이에 양다리를 걸쳤다는 게 희생자의 죄목. 헨리는 살인을 멈추지 않는다. 코빈과 제물을 나눠 갖겠다며 시체를 반으로 가르고 기뻐하는 사이코 패스다. “반은 코빈의 몫, 반은 내 몫이야. 죄도 반반이야.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코빈은 헨리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헨리는 앙심을 품는다. 그래서, 오드리 살해범은 뻔하게도 헨리일까? 아니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케이트일까? 이야기는 케이트, 코빈, 앨런, 잭의 시점을 오가며 나아간다. 화자가 바뀔 때마다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된다. “아무도 믿지마.” 긴장을 놓을 때마다 스완슨은 경고한다.

스완슨은 언론 인터뷰에서 소설을 “아파트 스릴러”라 정의했다. 아파트라는 공간으로부터 독특한 공포를 자아냈다는 자평인데,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소설은 엄청난 명작까지는 아니다. 서둘러 수습하는 결말에서 맥이 조금 빠지고, ‘신 스틸러’여야 마땅한 헨리는 너무나 전형적인 악마다. 이야기가 ‘적당히’ 쫄깃한 것, 문장이 매끈해 거슬리지 않는 것, 결말이 산뜻해 책장을 덮고도 찝찝하지 않은 것이 소설의 미덕이다. 그렇다면, 여름 소설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피터 스완슨 지음∙노진선 옮김

푸른숲 발행∙472쪽∙1만4,800원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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