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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서른여섯 살의 생각

입력
2016.03.0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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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잘 나간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피곤해진다. 다른 사람들도 다 고만고만하다는 걸 알게 되면 인생은 곤란해진다.

인생이 피곤해진다는 건 생각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당신이 작가라고 해보자(아니길 바라지만). 평소 당신이 아니꼽게 생각하던 작가가 상을 받는다. 아니꼽게 생각하던 또 다른 작가가 창작지원금을 받는다. 아니꼽게 생각하던 제3의 작가가 평단의 호들갑스러운 찬사를 받고 아니꼽게 생각하던 제4의 작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니꼽게 생각하던 제5의 작가가 해외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는다. 기타 등등. 목록은 이어지고 당신은 생각한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나? 기타 등등. 당신은 매일 밤잠을 설친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사실 당신이 아니꼽게 생각하는 그 작가들도 딱히 잘 나가는 건 아니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그러니 그들을 미워하고 세상을 원망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 상대적으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들이 앞으로 얼마나 잘 나가게 될지는 회의적이다. 시대는 변했고 이제 책만 써서 ‘진짜로’ 잘 나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건 나쁜 소식이다. 당신 또한 영영 잘 나갈 일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너무 천박하게 말하고 있는 건가? 잘 나간다는 말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면서? 물론 잘 나가기 위해서 책을 쓰는 작가는 없다. 최소한 그렇게 말하는 작가는 없다. 따라서 작가가 다른 작가를 아니꼽게 생각한다면 그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그것은 의미의 대립이고 역사와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싸움이다. 같은 대상을 사랑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들의 분투가 더더욱 한가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잘 나가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하)니.

하지만 그 이야기엔 결정적인 요소가 빠져있다. 바로 돈이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실태는 처참하다. 지난 한 해 동안 14개 분야의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은 평균 1,255만원. 그 중 문학 분야는 214만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 달에 17만8,333원을 번 셈이다. 그보다 앞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올해부터 우수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작가들이 글을 발표할 지면이 줄어들 건 뻔하다. 발표에는 작품 공모를 통해 작가에게 창작 지원금을 주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 예산과 선발 인원을 축소하고 지원 요건 또한 만 36세 이상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잘 나가고 말고를 떠나, 생존 자체가 곤란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왜 작가들은 돈 이야기를 안 할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문학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떤 방식의 지원인지, 지원 자체가 필요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있고 다른 예술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결국 그것은 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묻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그런 질문을 던질 생각이 없다. 지겨워서가 아니다. 그것 말고도 생각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생각이 많다. 글을 쓰기는커녕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지도 못할 정도다.

내가 가장 최근에 보다 만 영화는 루이 말 감독의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다. 나는 영화 시작 2분 33초 만에 시청을 포기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 직후였다. “열 살 때만 해도 난 부자였다. 귀족처럼 살았다. 택시 타고 다니며 완전 편히 살았다. 내 생각은 예술과 음악으로 가득 찼었는데… 내 나이 36세, 이젠 오직 돈 생각뿐이다.”

금정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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