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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로 냉방, 쓰레기 소각해 난방.. 혁신지구에 인재 몰려들어

입력
2017.12.18 16:5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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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블레노우의 '22@' 혁신지구 거리 풍경. 바르셀로나=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지난달 1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블레노우의 '22@' 혁신지구 거리 풍경. 바르셀로나=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경제의 중요한 축은 방직ㆍ섬유산업이었다. 바르셀로나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평생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 백작도 섬유산업으로 부를 축적했던 인물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구엘공원, 카사밀라 등 가우디의 대표작들도 바르셀로나의 섬유산업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은 쇠퇴해버린 섬유산업의 잔재가 도시재생의 힘을 입어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명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바르셀로나 북동쪽 포블레노우 지역에 조성된 ’22@바르셀로나’ 혁신지구가 그곳이다. 방직ㆍ섬유산업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이곳은 1960년대 이후 제조업 쇠퇴로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슬럼화가 진행됐다. 그러던 중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대규모 개발이 시작됐고, 바르셀로나시가 2000년 22@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혁신과 기술의 중심지로 환골탈태해 세계 도시행정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의 스마트시티가 대개 시민 참여 중심의 상향식 정책 수립을 중심으로 하는 것과 달리 22@는 관이 주도하는 하향식 정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2007년 이후 매년 세계 300개 이상의 도시에서 22@ 혁신지구를 참고하기 위해 견학을 온다. 지난달 13일 찾은 22@에도 세계 각국에서 온 방문단이 현장을 둘러보며 견학하고 있었다.

‘산업지구+주거공간’ 융합의 모범사례

이날 22@ 혁신지구에서 만난 호셉 미켈 피케 국제과학혁신단지협회(IASP) 회장은 “22@ 프로젝트는 장기적 도시계획이라는 바르셀로나의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는 유럽 도시 가운데선 유례가 드물게 19세기 후반 대규모 도시계획으로 재정비돼 바둑판처럼 네모반듯한 블록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22@는 이 같은 도시계획의 연장 선상이다. 피케 회장은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설립한 지방 공기업 ’22 아로바(@의 스페인어 표기) BCN’의 대표를 8년간 맡으며 22@ 프로젝트를 총지휘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 기획은 포블레노우 일대를 정보통신기술(ICT), 미디어, 에너지, 바이오, 디자인 등 지식 기반 산업의 중심지로 바꾸기로 방향을 정하고 수도, 전기, 통신 등 지하에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며 “이후 지식 경제를 구성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인 기술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대학을 유치하고 기술을 지닌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관련 기업들을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22 아로바 BCN은 이 구역이 산업이 융성하면서 시민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바뀔 수 있도록 임대주택을 대거 늘리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에너지 정책도 ‘스마트’하게 바꿨다. 피케 회장은 “차가운 바닷물을 끌어와 냉방에 쓰고 쓰레기를 소각해 나오는 열로 난방을 하는 방식으로 구역 내의 냉난방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연간 3,000톤 이상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구역 내 기업 수는 2배로 늘어 7,000개를 돌파했고 근로자 수도 62.5%가 늘어나며 9만명을 넘어섰다. 지역 주민 수 또한 23%가 늘어났는데 이 같은 증가 추세는 같은 기간 바르셀로나 전체 평균인 8%보다 3배에 가까운 증가율이다.

피케 회장은 “150여년 전 도시계획가 일데폰스 세르다가 블록 형태로 디자인을 잘 해놓았기 때문에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었다”며 “22@ 구역은 지식경제를 중심으로 산업지구와 주거공간이 공존하면서 관련 서비스가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했다. 부산 사상공업지역 재상사업의 자문단으로 지난해 부산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한국은 대부분 산업지구와 주거공간이 분리된 듯한데 두 공간을 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블레노우의 슈퍼블록 내 거리 풍경. 바르셀로나=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1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블레노우의 슈퍼블록 내 거리 풍경. 바르셀로나=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실험 ‘슈퍼블록’

바르셀로나는 22@ 프로젝트 외에 최근 흥미로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실험 중이다. 가로세로 113.3m 크기의 블록 9개(가로세로 약 400m)를 묶은 슈퍼블록을 지정해 주민 차량과 응급차나 쓰레기수거차 등 공공서비스 차량, 배달차량, 자전거만 들어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속도도 시속 10㎞ 이하로 제한하고 주차도 정해진 구역에만 할 수 있게 했다. 1993년 구시가지 보른 지구에 처음 시행한 뒤 2005년 가르시아에 적용했다. 이어 지난해 11년 만에 파일럿 프로젝트로 포블레노우가 지정됐다. 포블레노우 슈퍼블록 지정은 과거처럼 도시재생이 아니라, 대기 환경 개선이 주목적이다.

슈퍼블록은 블록 사이의 도로를 원래 목적인 주민 공동체 공간으로 돌려놓기 위해 시작됐다. 자동차가 발명되기도 전인 1859년 세르다는 블록 사이에 넓은 공간을 비워놓고 주민들이 만나 친목을 나눌 수 있도록 했으나 이 공간이 차량 증가와 함께 매연을 내뿜는 도로로 바뀌었다. 인구 50만 이상 유럽 도시 중 파리와 아테네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바르셀로나는 대기오염 때문에 연간 3,500명 이상이 조기 사망한다는 조사가 지난해 발표되자, 슈퍼블록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승용차와 오토바이 교통량을 대거 줄이고 자전거와 대중교통 사용을 늘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 후반 바르셀로나의 150여년 전 도시계획가 일데폰스 세르다는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디자인했다. 바르셀로나는 가로세로 113.3m의 블록(스페인어로는 만사나 Manzana라 부른다) 600여개로 이뤄져 있다. 사선으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디아고날(Diagonal)이다. 이러한 도시계획 덕에 바르셀로나는 유연한 변화가 가능하다.
19세기 후반 바르셀로나의 150여년 전 도시계획가 일데폰스 세르다는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디자인했다. 바르셀로나는 가로세로 113.3m의 블록(스페인어로는 만사나 Manzana라 부른다) 600여개로 이뤄져 있다. 사선으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디아고날(Diagonal)이다. 이러한 도시계획 덕에 바르셀로나는 유연한 변화가 가능하다.

이날 방문한 포블레노우 슈퍼블록 거리는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어 한산했다. 교차로에 설치된 커다란 화분과 어린이 놀이터, 도로 위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설기까지 했다. 바르셀로나시의 도시계획 총감독 톤 살바도는 올 초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기오염과 소음공해, 교통사고를 줄여 보다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도시 모델의 기본 원칙”이라며 “슈퍼블록은 시민들에게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공동체가 내부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공간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블록을 주민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슈퍼블록 내부 일부 건물에는 ‘노 슈퍼블록(No Superilla)’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볼 수 있었다.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정책을 정했다는 불만의 표현이기도 하고, 이동과 주차 등의 불편함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구역 내 기업들도 차량 제한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슈퍼블록 주민이 아니더라도 슈퍼블록에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밝히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슈퍼블록은 스마트시티 정책이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르셀로나시는 포블레노우 실험을 통해 얻은 시행착오와 주민들의 의견을 참고해 에이샴플라, 산트 안토니, 오르타, 산트 안드레우 등에 추가로 적용할 계획이다. 2년 이내에 자동차ㆍ오토바이 교통량을 20% 이상 줄이는 것이 목표다. 바르셀로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자전거도로를 대폭 늘려 지난해 말 116㎞였던 것을 최근 152㎞까지 확장했다. 내년에는 308㎞로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또 택시, 시내버스, 오토바이, 소형트럭, 배달용 차량 등을 중심으로 전기차 교체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메르세데스 비달 라고 바르셀로나 교통 부문 시의원은 “포블레노우 실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활용해 슈퍼블록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며 “‘도시교통계획 2013-2018’에 따라 보행자와 자전거 우선 정책, 대중교통 이용 장려와 함께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가능한 많은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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