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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안(安)과 정(定)에 대해서

입력
2017.08.0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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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말씀 드린 대로 저는 열 이틀간 “생명평화, 신 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 탈 원전과 화석 에너지 사용 축소, 에너지 절약”을 구호로 행진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저와 행진단이 이런 행진을 매년 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성과 안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성에 빠지고 우리의 삶에 안주하게 되는 것은 편안함과 안정을 너무도 좋아하고, 반대로 불안정이나 불안을 너무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安)을 너무도 좋아합니다. 안전(安全)도 좋아하고, 안정(安定)도 좋아하며, 편안(便安)도 좋아하고, 안락(安樂)함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안주(安住)는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요. 안정과 안주는 한 글자 차이일 뿐인데 안주는 나쁘지만 안정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한 글자 차이로 이렇게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이 갈리는 것일까요?

우리는 자유도 좋아하고, 자유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사랑을 사랑답게 하며, 순종을 순종답게 하고, 일치를 일치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또 동시에 정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고, 정해진 대로만 하라고 하면 자유가 억압당하거나 제한되는 것처럼 느끼면서도 정해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저와 행진단이 행진을 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출발지와 목적지 외에는 아무 정해진 것이 없이 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을지 하나도 정하지 않고, 목적지 어디에 어떻게 머물지 하나도 정하지 않습니다. 먹을 것과 머물 곳을 다 구걸하여 해결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고,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돈도 없이 간다는 것, 그것도 단체로 어디를 간다는 것은 대단한 불안입니다.

이렇게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으면 매이는 것이 없으니 우리 인간이 자유로울 것 같지만 불안하기에 정해지기를 바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밥 먹는 시간이 정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불안하여 다른 것도 하지 못합니다. 내가 어디 간 사이에 밥 먹고 치워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 때문에 어디 나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사는 사람들 간에는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을 정하고, 다른 중요한 것도 시간표를 짜서 정해야 불안하지 않고 편안합니다.

심지어는 운명이나 병조차도 그러합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간단한 건강검진 차원에서 갔는데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며 정밀검사를 하자고 하여 그리 하고 돌아왔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기간 무지 불안합니다. 그러다가 암이라는 판정(判定)을 받으면 결과를 모를 때보다 숫제 낫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決定)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해지기 전까지는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반대로 정해지거나 결정이 나면 그 나름으로 안정이 됩니다. 사실 불안이란 정해지지 않은 불안이고, 안정이란 정해진 안정인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도 누구에 의해 정해지거나, 정해진 것에 대해 우리는 거부하고 싶지만,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면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마음이 편하고 안심이 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정하건 누구에 의해서 정해지건 우리는 정해져야 정해진 것에 안착(安着)하고, 안심을 하고, 안정을 누리게 되는데 문제는 안정은 안주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입니다.

누군들 안정을 마다하고 불안정과 불안을 스스로 택하고 싶겠습니까? 깨달은 자, 안주가 얼마나 우리를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것인지를 깨달은 자만이 살기 위해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거짓 삶이 아니라 참 삶을 살기 위해서 불안정과 불안을 스스로 선택하고, 대 자유를 살고 싶은 사람만이 불안정과 불안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안정에 안주할 것인가? 대 자유를 살 것인가?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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