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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린 기회 제공하는, 사법시험 왜 없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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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린 기회 제공하는, 사법시험 왜 없애나"

입력
2015.08.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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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도전 58세 최동수씨

"가진 것 없는 사람들 희망 북돋워

젊고 가난한 고시생들 위해 나섰다"

"로스쿨 제도 폐지 주장이 아니라

법조인의 길 다양화해 달라는 것"

모임의 대표 권민식씨 국회 호소

서명운동 참가자 1000명 돌파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58세 고시생인 최동수씨를 만났다. 자신을 '실패한 고시생'이라고 소개한 최씨는 "사시가 폐지되는 것은 서민들에게 몇 안 남은 공평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58세 고시생인 최동수씨를 만났다. 자신을 '실패한 고시생'이라고 소개한 최씨는 "사시가 폐지되는 것은 서민들에게 몇 안 남은 공평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가난했던 부모는 아들의 중학교 학비조차 댈 수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유일한 정규학력으로 아로새긴 아들은 그래서 늘 ‘배움’에 목말랐다. 17살 때부터 공사판을 전전, 막노동을 하면서도 공부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절함은 더해갔다. 그런 아들에게 ‘사법시험’은 희망이었다. 가진 것 없는 자신에게도 기회를 주는 시험이 있어, 아들은 가난했지만 비참하지 않았다.

올해로 58세인 최동수씨는 ‘실패한’ 고시생이다. 또래 가장들이 다니던 회사를 은퇴하는 시기 그는 여전히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사법시험을 두고 “비참했던 인생을 포기하지 않게 이끌어준 길잡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28세였던 1985년부터 시험을 준비했다. 일용직 노동을 하다 입대했고, 전역 이듬해인 1983년 7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지만 2년 만에 사직했다. 자신처럼 가난한 이를 돕는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가족계획협회(현 인구보건복지협회)서 일하던 아내가 뒷바라지를 자처하면서 최씨는 늦은 나이에도 호기롭게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5년 만인 1990년 1차 시험에 처음 합격했다. 학원 수업을 수강할 형편이 안돼 선택한 독학이었지만, 법학 서적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합격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1994년, 1998년에 이어 2003년과 2005년에 치러진 1차 시험 합격자 명단에 3~4년 간격으로 꼬박꼬박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차 시험 합격의 낭보는 끝내 오지 않았다. 지금은 아내의 권유에 따라 보습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믿어준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이하 모임)이 최근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서명운동에 동참, 이름을 올렸다. 4일 현재까지 서명한 고시생은 총 1,034명으로, 목표한 1,000명을 채웠다. 이날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만난 최씨는 “사법시험은 합격ㆍ불합격을 넘어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를 제공하는 ‘공평한’ 시험이기에 반드시 존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험이 주는 기회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겐 ‘희망’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누군가는 실패한 고시생인 내게 손가락질 하겠지만, 사시 폐지로 희망조차 가질 수 없을 가난한 젊은 고시생들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법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정착에 따라 내년에 1차, 2017년 2차 시험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때문에 사시존치를 위한 관련 입법을 요구하는 고시생들은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최씨의 경우 내년 1차에서마저 합격하지 못하면 사시를 볼 기회는 영영 사라지는 셈이다. 이 모임의 권민식 대표는 “국회 청원을 위한 ‘소개 의원’을 찾고 있다”며 “8월 중으로 국회 입법 청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 대표단은 3일 법사위 야당 간사인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면담을 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로스쿨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며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사람도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열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장 공정한 제도는 사법시험”이란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주변 여건이 이들에게 유리하지는 않다. 그나마 변호사단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법학자들이 포함된 로스쿨 측은 예정대로 사시폐지를 주장하고 있어 국회 합의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전국로스쿨학생협의회는 지난 달 24일 국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로스쿨제도 하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이 더 유리하다”며 “매년 130여명의 사회적 약자들이 특별전형제도를 통해 학비걱정 없이 로스쿨에 입학했다”고 고시생들의 주장을 반박하기까지 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ㆍ소년소녀가장ㆍ북한이탈주민 등 총 315명의 취약계층 입학생들이 지금까지 4차례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물론 최동수씨와 같은 저학력자들은 아예 로스쿨에 입학할 수도 없어 이들과 같은 학비 지원은 꿈꾸지 못한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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