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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만 뒤쳐지는 걸까

입력
2017.11.21 14:3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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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뒤쳐지는 걸까.” 함께 점심을 먹던 후배가 문득 내뱉었다. 그 친구는 최근 퇴사를 하고 3개월째 쉬고 있었다. 지난 몇 년 간 두세 번 이직 경험은 있었으나 한 달이 넘도록 쉬어 본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쉬어도 되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지.“ 나 역시 몇 년 전 퇴사할 때 위와 같이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짐은 잠시뿐, 이내 현실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2보 전진을 꼭 해야 할까? 1보 후퇴는 왜 필요한가. 이런 생각을 하며 몇 주를 훌쩍 보냈다. 처음 퇴사할 때는 신났는데 어느새 불안감만 가득했다. 페이스북을 보면 친구들이 회사 욕을 하면서도 주말에는 여행과 맛집을 다니며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부러웠다.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나만 뒤쳐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너는 왜 100점을 받지 못하니”라는 교실에서부터 시작되는 강박은 수능을 기점으로 극대화된다. ‘남들 다 대학 합격하고 잘 다니는데 왜 나만 재수하는 걸까.’ 평균적으로 21~22살에 많이 가는 군대에서는 신병의 나이가 25살만 되어도 “왜 이렇게 늦게 왔어?”라고 묻는다.

대학 시절 1~2년씩 휴학하고 취업 준비가 길어질수록 나만 비정상적인 것만 같다.

이렇게 축적된 강박들은 개인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학습화가 된다.

“아직도 결혼 안 하니?” “애는 언제 낳니?” “퇴사 후 언제까지 백수로 살 거니?” 이렇게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춰 살다가 생의 마지막 날 어쩌면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늦게 죽니?”

프랑스에서는 꼭 20세에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한다. 만약 요리를 좋아한다면 14세에 기술고등학교라는 직업학교에서 요리를 공부한다.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10년 뒤인 24세에는 10년 차 요리 전문가 팀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공부를 하고 싶으면 20대 중ㆍ후반에라도 대학에 가는 게 자유롭다. 사회생활을 먼저 경험하고 나니 내게 필요한 공부를 찾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우선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요리학원을 다니고 나서 20대 후반쯤 되어 겨우 1년 차 요리사가 된다. 20대 내내 공부를 했지만 그것이 사회생활에 제대로 쓰일지는 미지수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에 맞는 속도가 있다. 우리나라는 10대와 20대에게 모두 똑같은 속도를 강압하다 보니 30대가 되고 나서야 내 속도를 찾기 시작한다. 필자에게 퇴사 역시 그런 의미였다. 내 속도를 발견하는 시간. 다시 재취업을 하든 여행을 가든 사업을 하더라도 그 전까지 숨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내 인생에서 몇 개월이나 몇 년 정도 쉬어도 괜찮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해보면, 무리해서 과속을 하는 것과 적정 속도로 느긋하게 가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고작 5~10분 정도 차이가 날 뿐이다.

헤드헌팅 업무를 10년 넘게 하던 분이 있다. 본인도 5년 차쯤에 너무 힘들어서 쉬었다고 한다. 1년을 내리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재취업하여 비슷한 회사를 다니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이(?) 쉬고 나니 일이 하고 싶어지고 내가 열정을 갖고 싶은 분야에 더 헌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까 그 후배 역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있다.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준비하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숨 고르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불안감도 그 길을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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