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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등록 : 2017.11.16 13:57
수정 : 2017.12.04 10:51

[최인철의 프레임] 영혼 없는 칭찬

등록 : 2017.11.16 13:57
수정 : 2017.12.04 10:51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니, 힘들 때 내 곁을 지키는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

둘째,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니, 마지막 차수까지 술자리에 남아 나와 술잔을 기울이는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

두 가지 방법 모두 우리 사회에 막강한 지지 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법은 애주가들에게나 적용될 수 있을 뿐, 기실 진정한 친구를 구분하는 도구라기보다는 어떡해서든지 한 잔 더 하려는 주당들의 교묘한 합리화일 가능성이 높다.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라기보다는 그저 술을 좋아하는 친구일 뿐이다.

두 번째 방법과는 달리 첫 번째 방법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라는 주제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가족이나 친구의 정서적 지원을 통해 힘든 상황을 쉽게 이겨내는 경우는 비단 과학적 연구를 통해 확인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곁을 지켜준 친구’ 때문에 화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다.) 사실 우리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주된 이유도 힘든 상황에서 서로가 주고받는 사회적 지지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는 앞의 두 가지 방법 외에 진정한 친구를 구분하는 제3의 방법을 제안한다. “진정한 친구란 내게 생긴 좋은 일을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해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게 건네는 축하의 온도를 재보라.”

진정한 친구는, 내게 생긴 좋은 일을 마치 자신의 일 인양 호들갑을 떨어가며 축하해 준다. 좋은 일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등 깊은 관심을 보인다. 심지어 나보다 더 기뻐하기까지 한다. 친구의 이런 관심과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내게 생긴 좋은 일을 다시 기억하고, 스토리를 더 정교하게 구성하면서, 그 일의 의미를 더 깊게 음미하게 되는 혜택을 누린다. 이뿐 아니라 친구가 보여준 강력한 정서적 지지로 인해 서로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건강과 행복으로 연결된다.

반대로 진정한 친구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떤 축하의 말을 건넬까?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우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이다. 축하한다는 뜻은 전하지만 구태여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진중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사실 축하의 마음이 별로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가 아주 고약한 경우인데, 이런 유의 반응은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지혜롭게까지 보인다. 내게 생긴 좋은 일의 부정적 측면들을 굳이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면서,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며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훈계조 칭찬을 한다. 열심히 일해서 중요한 자리에 승진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긴 한데, 가정에는 더 소홀해지겠네”라고 한다든지, “너 때문에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도 있으니 대놓고 기뻐할 일만은 아니야”라고 찬물을 끼얹거나, “언제까지 잘 되리라는 법은 없어. 늘 조심해라”라는 식의 축하인 듯 야단인 듯, 지혜인 듯 질투인 듯 구분하기가 애매한 반응을 보인다.

마지막 부류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우다. 내 이야기 자체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반응이 여기에 해당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 세 가지 부류의 반응은 모두 인간관계에 해롭다. 첫 번째와 세 번째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지혜롭고 현명해 보이기까지 하는 두 번째 부류의 반응도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쉽게 단절된 가능성이 높다. 연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 반응을 서로에게 많이 보일수록 관계 만족도가 낮아질 뿐 아니라 이후에 이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위로하는지도 결혼 만족도에 중요하지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상대 배우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축하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누군가에게 축하할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행동은 ‘무조건 축하하기’다. 축하한다는 말에 “그러나” 혹은 “그런데”라고 조건을 달거나 그에게 생긴 좋은 일의 숨겨진 측면을 들추어 조언하는 것은 진정한 친구가 할 일은 아니다.

축하도 연습해야 한다. 힘든 상황에 맞닥뜨린 가족과 친구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들에게 건넬 위로의 말과 표정은 연습하면서도, 우리는 정작 축하 연습은 케이크 촛불 앞에 둘러앉아 박수치는 것 말고는 하지 않는다. 축하 연습은 위로 연습만큼이나 중요하다. 진정한 친구는 내게 생긴 좋은 일을 축하할 때 구분되는 법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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