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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카타로 떠난 신안선 고려에도 들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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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카타로 떠난 신안선 고려에도 들렀나

입력
2016.10.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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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발굴40주년을 맞은 신안선은 2만4,000여 점의 유물과 28톤 상당의 동전을 쏟아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올해로 발굴40주년을 맞은 신안선은 2만4,000여 점의 유물과 28톤 상당의 동전을 쏟아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선이 1323년 중국 저장(浙江)성 경원(慶元ㆍ현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博多ㆍ후쿠오카)로 향하던 원나라 무역선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침몰 전 신안선의 항로에 대해서는 연구가 활발하지 않아 위험을 무릅쓰고 고려에 들렀다기보다 하카타로 바로 향했을 것이라는 ‘일본직항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김병근 학예연구관은 연구논문 ‘신안선의 항로와 침몰 원인’에서 ‘고려기항설’을 주장한다. 침몰지점, 계절ㆍ풍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배가 중간에 고려에 들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김 학예관은 26, 27일 전남 목포시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리는 신안선 발굴 40주년 기념 ‘아시아ㆍ태평양 해양네트워크와 수중문화유산’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내용을 발표한다.

김 학예관은 먼저 서해안 내만 깊숙한 곳에 위치한 침몰지점이 중일 직항로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간 정착 없이 하카다로 향했다면 멀리 전남 신안군 증도까지 표류하기 어렵고, 만약 거기서부터 표류했다 해도 중간에 많은 섬들이 가로막고 있어 증도 앞바다까지 떠밀려 올 수 없다는 것이다.

풍향을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음력 6월 3일 마지막 화물을 선적한 뒤 떠났다면 서풍이 적당히 불어줘야 목적항에 순조롭게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음력 6, 7월은 사실상 서풍을 기대하기 어려운 때다. 대형 범선이기는 했으나 계절풍까지 거스를 수는 없었다. 따라서 6, 7월 남풍의 힘을 받아 고려로 향했던 신안선이 신안지역을 떠돌다 증도 앞바다에서 최종 침몰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제 도자 무더기 속에서 7점의 고려청자가 발견되기도 했으나 발견 위치가 아래쪽인 점, 당시 중국에서 고려청자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점 등으로 여전히 고려기항설은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고려청자 외에 고려동경, 수저 등이 발견된 점으로 볼 때 고려인이 승선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김 학예관은 추측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8개국 30여 명 학자와 전문가가 초청돼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복원된 신안선 모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복원된 신안선 모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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