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사의 독자 권익 침해 여부를 살펴보고 편집 방향을 조언하는 독자권익위원회 11월 회의가 지난 1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 1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인 권광중 위원장을 비롯해 독자위원 최창렬 용인대 교수,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김남두 스타마크에이전시 사업부장, 주부 정희수씨, 대학생 윤여진(경희대) 변은샘(가톨릭대)씨가 참석했다. 한국일보에서는 간사인 이계성 수석논설위원과 진성훈 편집위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회의에서는 지난 한 달 간 중요한 이슈였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광화문 시위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윤여진=10월 27일자 ‘국회 예산심의권 되레 줄어들어’에서는 예비비에서 국정교과서 개발 비용을 써도 예산안 자동부의 때문에 국회 통제를 받지 않아 국회의원들의 예산 심의권이 축소된다는 부분을 지적한 것이 눈에 띄었다. 11월 5일자 ‘야 憲訴 청구인단 고민 고민…보수화 ‘헌재의 벽’도 높기만’에서는 어떤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학생과 학부모가 여러 사관을 공부하지 못하고, 교사가 교과서를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학습권 침해를, 현행 검정교과서 집필진의 교과서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출판권 침해를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다. 11월 9~12일 ‘‘국정’한국사 어떻게 쓰여질까’는 정부가 국정교과서의 집필에 직접 개입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실증적인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변은샘=국정화 TF 충돌을 다룬 10월 27일자 기사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과 비교해 표로 정리해 한눈에 알아보기 쉬웠다. 최근 치러진 수능은 국정화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근현대사가 실제로 수능에서 어떤 경향으로 나오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았을까. 광화문 시위를 앞두고 기사는 물론 사설에서도 언급이 없었다. 16일, 17일자 29면에 이를 다룬 기사가 있었지만 오피니언면 뒤에 나오는 사회면이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파리 테러 기사는 무척 구체적으로 많이 썼다.
정종섭 행자부장관 사의 표명 논란은 11월 9일자 신문에서 2차 총선용 개각 상황에 대해 표를 이용해 설명하면서 짧게 언급하는 정도로 그쳤다. 여기서 문제는 그 날 자 사설에서 지적했듯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장관을 시키는 바람에 잦은 개각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과 그 결과를 짚어주었더라면 좋았겠다.
김남두=10월 21일자 ‘국회 해킹’ 기사는 뚜렷한 증거자료를 제시한 것도 아닌데 너무 크게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10월 22일자 ‘당정 초등과정 단축 추진’은 저출산과 고령화 해법으로 다소 어이 없는 정책 발상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받아쓰듯 한 느낌이다. 그 날 자 ‘까톡 2030’의 ‘청년 창업가’ 기획은 성공 사례만으로 창업을 너무 장미빛으로 보여준 게 아닐까 싶었다.
국정교과서 관련 보도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듯 하더니 대통령의 “역사 가치관 뚜렷해야 통일” 발언 이후 꼬리 내린 듯한 아쉬움이 든다. 11월 14일자 ‘물 부족’ 기사는 현상 설명에만 지면을 할애한 듯한 느낌이다. 4대강에 그렇게 돈을 들여놓고도 이런 상황이라는 등의 비판적인 지적이 없었다.
파리 테러는 여러 면을 할애해 나갔지만 거의 비슷한 시점에 일어난 광화문 시위는 한 면뿐이었고, 그 다음 날도 지면이 비슷해 대조되었다. 그마저 그 많은 사람이 왜 모였는지, 경찰 차벽은 위헌이 아닌지 등은 생략한 채 일반적인 서술만 했다.
최창렬=차벽에 대해 정부 쪽에서는 위헌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이 시위대에 상당한 자극을 줬을 수 있다. 청와대로 시위가 이어질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지만 시위가 있을 때마다 매번 과격할 것이라며 미리 차벽을 설치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비판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폭력 문제와는 별도로 시위대의 주장이 타당한지, 노동개혁 등 정부의 정책은 문제 없는 것인지 하는 시위의 본질을 다뤄줬으면 좋겠다. 양비론에 빠지지 말고 ‘과잉진압 vs 과격시위’ 이면의 깊은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11월 7일자 친박 인사들에 의해 불거진 ‘개헌론’과 관련해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잘 보도했으나, 용어 등이 일반에 생소할 수 있으므로 그 간 개헌 관련 발언이라든지, 여야의 셈법의 차이 등을 별도로 정리해줄 필요가 있었다.
정희수=1면 기사나 사진에 자극적인 것을 피하려는 것 같지만 11월 16일자에는 물대포 사건을 1면 톱으로 다뤄줬으면 했다. 너무 뒷짐지고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국정화 논란 보도는 꼼꼼히 잘했다. 사설이나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10월 23일자 ‘36.5도’칼럼 ‘심 봉사와 박정희 대통령’은 속이 시원했다. 내년 총선 선거구 확정 지연 사태는 국정화 기사에 가려 관련 기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국정화 문제 만큼 발 빠른 기사들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미세먼지 악화가 만성적이다. 중국의 공업화, 화력 발전소 등의 위험성, 대처 방안 등을 적극 알려야 한다. 경제문제도 그렇고 환경적으로 국민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기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10월 28일자 소시지 햄 발암물질 기사는 고기 자체가 문제인지 가공 과정이 문제인지 불명확하다는 보도가 나가고 열흘쯤 지나 ‘불안하면 김치 곁들여라’는 기사가 나왔다. 심각성을 자아냈다가 뒤집는 기사들이 제법 된다. ‘한국인 도박 천국 마카오’ 기사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데 기획으로 다룬 느낌이다.
지평님=국정화 논란은 한국일보의 열정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것 같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일보 편집국의 보도 태도나 외부 칼럼 등은 ‘반대’로 비교적 선명했다. 그런데 국정화 확정 직후 대통령이 “역사가치관 뚜렷해야 통일” 된다며 논란에 쐐기를 박은 직후부터 열정적이던 보도가 움츠러들었다. 국정화는 돌이킬 수 없는 사안이고 총선 문제 등 정치적 의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달 넘게 공들여 보도해 놓고 그렇게 물러서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안타깝고 납득하기 어렵다. 이를 중립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마카오 도박’ 기사는 대중적인 흥미를 돋우는 취재였지만 왜 하필 국정화 논란이 정점이던 시기에 1, 3면에 배치했는지 의아했다. 이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 중에는 국정화 이후 시민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터뜨린 기사라는 의견도 여럿 있었다.
11월 13일자 ‘마일리지로 일등석 타기’ 기사는 이미 알려진 하찮은 소재일 수 있지만 큰 화제를 불렀다. 기사가 맛깔스러웠고 편집도 눈길이 갔다. 이런 식으로 재가공할만한 기사거리는 국제, 정치, 사회 분야에 무수히 있지 않을까. 포상이나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이런 유형의 기사를 발굴해내도록 독려해보는 건 어떨까.
권광중=집회ㆍ시위는 목적이나 절차가 정당해야 한다. 과잉 진압이라고 강조하며 정당하지 못한 집회 시위를 옹호하거나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일보의 이 부분 보도는 대체적으로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차벽에 대해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2011년 헌재 결정은 청구인들이 시위와 무관한 일반시민이었고, 폭력 시위가 있고 4일 후까지 차벽을 유지해서 청구인들의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요지다. “차벽 설치는 어떤 경우에도 위헌”이라는 것은 오해다.
윤여진=한국일보는 물대포를 쏘는 장면, 참가자들이 밧줄로 차벽을 끌어내리는 장면을 사진으로 부각했다. 차벽에 대한 법률적 설명이 필요하다. 차벽은 마지막에 설치되어야 하는데 이미 설치된 상태에서 일종의 차단선 역할을 했다. 폴리스 라인처럼 형성되는 게 문제다. 헌재 결정에서 지적한대로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하고 집회가 벌어진 뒤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계성=이번 한국일보의 시위 관련 보도는 미흡한 감이 있다. 양비론으로 소극적으로 가다 보니 관련 기사 분량이 적었을 것이다. 문제가 된 쟁점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도해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한국일보의 바람직한 중도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극단으로 가지 않으려다 보니 어정쩡한 것이 중도의 함정이다.
진성훈=광화문 시위를 소홀히 다루지 않았나 하는 지적이 있었는데 파리 테러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일보는 과격 시위도 과격 진압도 안 된다는 입장이라 기사를 앞쪽에 크게 배치하기 어려웠다. 국정화 문제에서 꼬리 내린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었는데 기사가 줄어든 것은 교과서에 대한 새로운 뉴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화에 비판적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정리=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고선영 사원 god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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