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등 핑계로 해외 출국도 고려
“대치동 B상가 C병원에 지난주 금요일 오후5시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다녀갔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관련, 방역당국 못지않은 정보력을 지닌 서울 강남 대치동 학부모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실시간 중계한 글이다. 서울 강남보건소에 확인한 결과, 141번(42ㆍ남) 환자는 메르스 확진 판정 하루 전날인 12일 오후 C병원 원장에게 약 10분간 상담을 받았고, 약국을 이용했다. 결국 해당병원과 약국은 ‘26일까지 자율 휴진한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닫았다.
개원의들이 메르스 사태로 정신ㆍ경제적 고통이 커지고 있다. 메르스 의심증세 환자들이 많이 찾는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개원들의 고민은 더하다. C병원처럼 메르스 확진 환자가 상담이나 치료를 한 경우 병원폐쇄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전국 49개 의원이 메르스 환자 경유로 인해 임시 폐쇄됐다.
개원의들은 메르스가 감기증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감기인 줄 알고 치료한 환자가 메르스 확진자가 되면 꼼짝없이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발열환자는 사절한다’는 문구까지 내걸고 있다. 방역당국은 의심 환자들의 가벼운 질환은 거주지 인근 의료기관을 이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메르스 최전선이라 할 1차 의료기관인 개원의들은 언제 메르스 환자가 나올지 몰라 좌불안석인 셈이다.
서울 강남 한티역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 중인 H씨는 “메르스 관련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환자들이 말을 하지도 않아 ‘복불복’ 심정으로 치료하고 있다”면서 “메르스 사태 후 환자가 60%정도 급감해 직원 급여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안 룰렛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해외 세미나 등을 핑계로 문을 닫고 해외로 출국하려는 개원의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개원의들이 해외도피까지 고려하는 것은 ‘메르스 낙인’ 때문. 메르스 환자경유 의료기관으로 밝혀지면 잠복기가 지난 후 현장에 복귀해도 정상운영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낙인’이 돼 문을 닫느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일반 마스크와 손세정제가 유일한 보호수단인 점도 개원의들에게는 불안요소 일 수밖에 없다. 익명의 한 개원의는 “혼자 살겠다고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착용할 수도 없고, 마스크를 쓰고 시간 날 때마다 손세정제를 쓰고는 있지만 불안하다”면서 “방호복을 입고도 감염되는 판에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보건당국의 조치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2차 감염 진원지가 됐지만 관할 강남보건소는 대형병원을 위주로 보호장비를 지급하고 있다. 이 보건소 관계자는 “개원의에게 지급하는 것은 마스크인데 이마저 동이 났다”며 “개원의들이 자체 대비하는 걸로 안다”고 했다.
개원의들은 보건당국이 환자가 경유했어도 상황이 종료된 의료기관에 대해 환자들의 이용을 권장해줄 것을 주문한다. 인천에서 신경내과를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환자들 입장에서는 메르스 환자경유 병원에서 치료받는 게 두려울 것”이라며 “상황이 종료돼 문을 연 병원에서 환자들이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방역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계에서는 메르스 환자가 경유한 사우나, 찜질방, 약국 등은 공개하지 않고 개인병원만 공개하는 것은 형평성은 물론 지역사회 감염 차단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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