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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여야 대표 간 국회 본회의 논쟁을 許하자

입력
2017.04.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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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로서 쑥스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대선에 앞서 열리는 TV토론에 별다른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10년째 정당을 출입하고 있다는 깜냥만으로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예상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쟁점에 대해 자기 입장만 주장하며 평행선만 달리다 끝나겠지’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13일 1차 TV토론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간 공방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송곳 질문으로 토론을 주도했다. 보수ㆍ진보의 관습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증세엔 한 목소리를 내다가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에는 정반대 입장에서 상호 논쟁하며 박진감 있게 토론을 이끌었다.

예상치 못한 볼거리에 2차 TV토론에 대한 기대가 컸다. 더구나 토론 방식도 준비된 자료가 없이 벌이는 첫 ‘스탠딩 토론’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19일 방송된 2차 TV토론의 전국 평균시청률은 26.4%로 1997년 대선 때 TV토론 도입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각 후보들은 자신의 정책적 우위를 알리기 보다 주적(主敵) 논란과 대북송금과 같은 해묵은 안보 이슈에 몰두했다. 새로운 토론 방식을 숙지하지 않은 듯 상대 후보의 말꼬리 잡기가 반복됐다. 23일 선관위 주최 외교ㆍ안보ㆍ정치 분야 TV토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토론 주제와 먼 ‘돼지발정제 성범죄 모의’ 논란이 토론 초반을 지배했고, “내가 갑철수입니까, MB 아바타입니까”와 같은 논점을 흐리는 질문과 상대의 질문에 눙치는 답변만 반복돼 적잖이 실망했다.

토론이 중구난방이 된 것은 새로운 방식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후보들이 토론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다. 국회 의정활동 과정에서 상대 당 의원들과 격의 없는 토론과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면, 이처럼 산만하고 맥 빠진 토론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후보들의 국회 의정활동을 돌이켜보면, 대개 당 지도부로서 매일 오전 회의에서 언론 앞에서 일방적 주장이나 입장을 밝히는 모습만 떠오른다. 지도부라는 이유로 국회 상임위에서도 자신의 질의만 마치고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배려를 받아왔다. 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와 맞짱토론을 벌일 수 있는 대정부 질문에서도 맨 뒷자리에 앉아 근엄한 자세로 소위 ‘전투력이 강한’ 초ㆍ재선 의원들과 총리의 공방을 듣곤 했다.

영국 의회엔 매주 수요일 낮 12시부터 30분간 총리질의(Prime Minister’s Questions) 시간이 있다. 의원 누구든 총리에게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고, 질문을 주도하는 이는 주로 야당 당수가 맡는다. 여당 당수인 총리 입장에선 BBC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현안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처럼 영국 당수들은 의정활동에서 자신의 논리로 상대 당 대표나 의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토론 능력을 단련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 보는 건 어떨까. 여야 당 대표나 원내대표들이 지상파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국회 본회의에서 쟁점 법안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대통령도 국회에서 야당 대표와 이런 토론을 벌이면서 소통하는 모습도 기대된다.

대선 후보를 꿈꾸는 정치인들에게 국회는 자신의 능력을 검증 받는 무대여야 한다. 의정활동 중 토론에 단련된 대선 후보들이라면 자신의 공약과 장점을 알릴 수 있는 TV토론에서 샛길로 들어서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2시간 동안 공허한 공방과 말꼬리 잡기가 난무하는 토론을 시청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야만 누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 있으며 어려운 경제ㆍ안보 상황을 헤쳐나갈 비전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김회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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