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5.11.24 17:10
수정 : 2015.11.24 17:10

“시각장애인 위해 3D 촉각 악보 개발했어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씨

등록 : 2015.11.24 17:10
수정 : 2015.11.24 17:10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귀국독주회를 가진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씨와 안내견 찬미.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제공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35)씨와 7년차 안내견 찬미(8·암컷·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등장하자 객석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김씨는 이날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에서 피아노 연주와 교수법 전공으로 박사를 마친 후 첫 귀국 독주회를 열었다. 김씨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즉흥곡, 앵콜로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가인 ‘렛잇고’를 연주했다. 찬미는 공연 내내 김씨 옆을 지켰고, 곡이 끝나면 벌떡 일어나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이날 연주가 더욱 특별했던 건 김씨가 국내 첫 나무칼럼니스트인 고규홍 교수와 손잡고 피아노 연주에 어울리는 나무의 이미지를 영상으로 띄운 것이다. 김씨는 2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음악회에 와도 들을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소리의 울림, 진동뿐 아니라 음악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화면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첫 귀국독주회를 가진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씨와 안내견 찬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제공

김씨는 두 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망막이 찢기는 중상을 입었고, 망막색소변성으로 시력을 잃기 시작해 초등학교 6학년 때 완전 실명했다. 시력을 잃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여러 악기를 접했던 김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악기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피아노의 웅장함에 빠졌다. 이후 고2때 피아노를 전공으로 삼고 1년 재수 끝에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숙명여대 피아노과에 입학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음악 연주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악보를 구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선생님이 악보를 불러주면 이를 점자 악보로 만들어 연습을 했고, 일본에서 점자 악보를 수입해서 공부했다. 대학시절에도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녹음해 집에서 수 차례 반복하고 정리하는 데에만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하지만 시각장애가 피아노에 대한 김씨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씨는 2001년부터 각종 콩쿠르를 휩쓸었고, 2004년에는 명예 대통령상인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상’을 수상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피바디 음대와 위스콘신 음대에서 각각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피아니스트 김예지씨의 눈이 되어준 안내견 찬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제공

김씨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안내견이다. 그는 2000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로부터 안내견 창조를 기증받고 활동하면서 국내에 안내견을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창조는 스스로 독립된 인생을 살게 해준 고마운 삶의 동반자였습니다. 2009년부터 같이 활동하는 찬미는 애교가 넘치는 성격으로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어요.”

김예지씨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한 3D촉각 악보. 영국 시각장애인 봉사단체(RLSB) 제공

김씨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씨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음악을 배울 때 불편했던 점들을 개선한 ‘3D 촉각 악보’를 개발해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점자 악보는 악보로 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무엇보다 화음이나 흐름 등의 표현방식이 일반 악보와 달라 시각장애인들이 악보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보완해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악보 프로그램을 개발,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으며 국내에도 곧 특허출원을 할 예정이다.

김씨는 “시각장애인도 일반인들과 같은 악보를 보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악보의 유니버설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다”며 “3D 촉각 악보 상용화에 성공해 아이들뿐 아니라 음악을 여가로 즐기고 싶어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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