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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복면가왕vs부활… ‘사랑할수록’ 논쟁

입력
2015.07.0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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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난리가 났다. 복면가왕의 챔피언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가 무려 4주 연속으로 승리를 챙기며 가왕의 자리를 지켰다. 많은 사람들이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내놓고 있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압도적인 성량’으로 유명한 가수 김연우. 그가 맞건 아니건, 그 기세를 꺾을 자는 당분간 없어 보인다. 그만큼 빼어난 실력을 뽐내고 있는 까닭이다.

부활의 '사랑할수록'을 열창하는 '복면가왕'의 김연우, 아니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MBC 화면 캡처.
부활의 '사랑할수록'을 열창하는 '복면가왕'의 김연우, 아니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MBC 화면 캡처.

관련 기사를 쭉 찾아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댓글이 많은 댓글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 “원곡보다 좋더라.” 그 밑에는 수많은 의견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부활 노래 안 들어봤냐, 이 초딩아”에서부터 “저도 부활 팬인데, 이건 원곡보다 낫네요” 등등, 원곡과 커버 간의 오랜 전쟁이 또 다시 부활한 양상이다. 참고로, 해외에서는 리메이크라는 용어를 잘 안 쓴다. 그보다는 ‘커버’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사실 이건 답이 없는 논쟁이다. 모든 걸 ‘개취’, ‘취존’이라는 만능키로 퉁치는 이 마당에 결론이 나기를 기대하는 건, 솔직히 순진한 발상 아닐까. 그런데 잠깐. 내 경험상, ‘개취’와 ‘취존’을 남발하는 사람들 중에 괜찮은 취향을 가진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세련되고 섬세한 취향을 갈고 닦으려면, 다른 이의 취향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수적인 까닭이다. 그런 사람이 누가 있냐고? 그게 바로 나다. 한 번만 믿어주기 바란다.

여기, 내 판단에 원곡만큼이나 좋은 커버가 하나 있다. 바로 영국 여가수 아델(Adele)의 ‘Make You Feel My Love’(2008)다. 이 곡의 오리지널을 부른 주인공은 전설적인 포크 싱어 송라이터 밥 딜런(Bob Dylan). 그는 1997년 자신의 앨범 ‘Time Out of Mind’를 통해 이 곡을 발표했던 바 있다. 자, 이 두 곡을 함께 비교해서 한번 감상해보길 바란다. 단언컨대, 열에 아홉은 아델의 커버에 손을 들어줄 거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밥 딜런의 원곡이 형편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한국이라는 땅에서만큼은, 아델의 것에 호감을 느낄 팬들이 많다는 뜻이다. 확실히 밥 딜런의 것은 거칠고, 투박하며, 정제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그에 반해 아델은 모난 곳 하나 없이 부드럽고 세련되게 곡을 부르고 진행한다. 아무래도 아델의 커버에 귀가 몰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Make You Feel My Love’ 외에도 ‘Knockin’ On Heaven’s Door’를 빼놓을 수 없다. 밥 딜런이 1973년 발표한 이 곡은 영화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의 주제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적어도 나 같은 1970년대 후반 세대들에게 이 곡은 무조건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강렬한 커버로 각인되어 있다. 밥 딜런의 곡은 뭐랄까, 너무 힘 빠지게 들려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밥 딜런의 것도 참 좋아하지만 말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본다. 간단하게, ‘시대에 맞는 귀’를 탑재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1970년대의 노래를 들을 때는 1970년대의 귀가, 2000년대의 노래를 들을 때는 2000년대의 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걸 무시하고 2000년대의 귀로 과거의 것을 들으면, 당연히 ‘구리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는 없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Thriller’(1982)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Dark Side of the Moon’(1973) 같은 앨범들은, 2000년대의 귀로 들어도 사운드가 끝내주는 걸작들이다. 그러나 이런 보기 드문 케이스가 아니라면, 시대에 맞춤한 귀의 장착은 필수다. 다채로운 청취 경험을 통해 여러 시대를 넘나드는 귀를 갖게 된다면, 위에 언급한 논쟁들,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유에서 나에겐 부활의 오리지널과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리메이크 모두 훌륭한 노래다.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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