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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질문 권하지 않는 사회

입력
2016.01.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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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회견의 내용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사전각본’이었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자와 내용이 미리 준비돼 있었고 실제 기자회견도 그렇게 진행되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각본대로 진행된 기자회견이 화제였던 모양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질문은 하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부담스럽다. 대학원생을 가르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어쩌나, 만족스럽지 못한 답변을 하면 학생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등등의 걱정을 달고 산다. 나는 1978년에 초등학교 입학해서 1990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12년 학창시절을 모두 군사정권 아래에서 보냈다. 수업시간의 질문은 곧 매를 부른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질문 권하지 않는 문화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숨 쉬며 면박을 주거나, 혼자 잘 생각해 보라거나, 아니면 아예 학생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판서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변해 주는 분도 없지 않았지만 드물었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는 일에 여전히 서툴다. 대학원생 때 국제학회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무척 친절하고 진지하게 학생들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답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질문은 토론의 시작이고 토론은 의견교환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한국의 공교육에서 창의성과 생동감이 사라지고 그 결과 여태 노벨 과학상 하나 못 받은 데에는 질문 권하지 않는 풍토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질문과 토론은 마치 수로와 같아서 이게 막히면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유통되지 못하고 국지적으로 고여 있기만 해 결국 썩고 만다. 요즘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편은 아니어서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왜 질문이 없냐고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다. 사전각본으로 연출된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 지난 2010년 G20 정상회담 때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국기자들의 질문을 받겠다고 수차례 얘기했으나 결국 중국 기자가 대신 질문했던 적도 있었다. 윗분에게는 감히 질문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며칠 전 정부는 세계 톱 1%에 속하는 과학자 300명을 내년까지 육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부터 내년까지 하면 될 일이 왜 여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과학은 목표나 결과라기보다 방법론이다. 노벨상을 받는 지름길은 의외로 단순 명료하다.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최고정책결정권자부터 질문을 권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정말 톱 1% 과학자가 나올까? 현 정부 최대국정과제인 창조경제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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