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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흙수저에는 생명이 있다

입력
2016.04.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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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동화 ‘항아리’는 투박한 모습으로 태어났으나 참고 기다려 결국 꿈을 이루게 되는 항아리의 이야기다. 독 짓는 젊은이의 첫 작품으로 태어난 주인공 항아리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뒷마당에 버려졌다. 쓸쓸한 날들이 이어지는 중에도 항아리는 생각했다. ‘언젠가 소중하게 쓰이는 날이 있을 거야. 이 세상에 항아리로 태어난 까닭이 있겠지.’ 얼마의 세월이 지나 항아리는 오줌독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항아리는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고작 오줌독이 되기 위한 거였나 싶어 슬펐지만, 봄이 되자 배추와 무를 잘 자라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독을 짓던 주인은 세상을 떠나고 가마터도 허물어졌다. 잡초가 우거진 땅 속에서 항아리는 이번에야말로 소중한 무엇이 되길 간절히 소원했다. 어느 날 그 터에 큰 절이 지어지고 항아리는 종탑 밑에 심겨졌다. 그러자 쇳소리만 나던 종에서 온 산을 울리는 맑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때 항아리는 깨달았다. 비록 못생긴 항아리로 태어나 오랫동안 오줌독으로 버려져 있었지만 뜻을 품고 인내했기에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참고 노력하고 기다린 항아리 이야기를 생각한다. 저 짧은 이야기 속에 인생의 모든 길이 담겨있는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정호승의 ‘항아리’를 노래극으로 들려주고 나서 학생들과 금수저와 흙수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학생들이 동화의 의미가 좋다는 건 알지만, 현실적으로 금수저가 부럽다고 한다. 그들에게 나는 이야기한다.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왜냐면 흙수저에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살아있다는 것과 성장한다는 것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이미 가진 것보다는 계속 성장하는 것이 백배 천배 낫다. 우리 기꺼이 위대한 흙수저가 되기로 하자. 나도 배불리 먹고, 남도 풍성하게 만드는 생명력 있는 흙수저가 되자. 금수저는 저 혼자 장식장에서 빛날 뿐이지만, 흙수저는 계속 자라서 사회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 면세점 자리나 다투고 영세상권이나 뺏으려고 애를 쓰는 기업은 언젠가 문 닫는다.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차세대를 내다보는 기업이라야 뻗어나간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땀 흘리지 않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금수저의 사회는 희망이 없다. 당대에 뭔가를 이룬 사람을 존경하는 흙수저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래 전 중국의 한 시인은 바위를 뚫고 뿌리 내린 대나무가 모진 비바람을 거뜬히 견뎌낸다는 시를 남겼다. 그것을 읽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나무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그 시를 마음에 새겼다. 대나무가 바위를 쪼개고 뿌리를 내린 것과 같이, 자기는 사람들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 어떤 풍파가 와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신념을 품었다. 이런 게 흙수저의 마음이다. 실제 그는 사람들 사이를 발로 뛰어다니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식물은 흙에서 살아갈 영양분을 얻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성장의 모든 것을 얻는다. 우리는 서로의 뿌리를 살리는 흙이 되어야 하고, 서로의 입에 성장을 떠주는 위대한 흙수저가 되어야 한다. 좋은 말인 건 알겠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거라고? 그렇지 않다. 이번 선거는 작은 노력이 거대한 물줄기를 바꾼다는 걸 보여줬다. 우리 안에 생명력에 대한 자신감만 가진다면 이기와 배타의 금을 성장과 공존의 흙으로 바꿀 수 있다.

나는 내 머리 속에서 금수저라는 단어를 지웠다. 금수저를 부러워하는 것은 포기의 문화다. 청년이여, 생명력 넘치는 흙수저가 돼라. 크게 외쳐라. “어디 생명도 없는 금수저 따위가.”라고. 그 순간 하늘은 그대를 향해 풍부한 햇빛과 알맞은 비를 내려줄 것이다. 그대는 뻗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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