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충족 여부가 첫 번째 고비
국회 본회의서 반란표 가능성도
새누리 권성동이 소추위 검사 역할
헌법 재판관 6명 이상 찬성해야
검찰이 20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하면서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치권 논의가 급속하게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통과는 물론이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과 결정까지 적지 않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성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檢 “대통령 공모범행”…탄핵 사유 충족하나
탄핵 절차를 시작하기 위한 첫 번째 장벽은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것이 탄핵 사유를 충족하는지 여부다. 박 대통령이 ‘정책적 결정’, ‘선의로 한 일’이라며 버틸 경우 탄핵 요건 충족 문제로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
헌법 제65조 1항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소추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할 때’라고 규정돼 있을 뿐, 위헌이나 위법성의 정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한 것이 그나마 기준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의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씨의 국정개입을 인정하면서도 범의는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는 식으로 위법 행위와 관련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청와대와 친박계가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 없이 발표된 중간 수사결과만으로는 탄핵안 발의에 동의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현재까지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만으로도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검찰이 혐의가 있다고 밝히는 순간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 재판과 처벌을 받는 게 우리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200명 찬성 채울 수 있나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단순 표계산으로는 현재의 야권 의석(171명)에 새누리당 의원 29명만 가세하면 의결정족수 200명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탄핵안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뤄지는 만큼 야당 내에서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비주류가 이날 국회 차원에서 탄핵 절차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돌아서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기자간담회를 열어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면 헌법에 규정된 만큼 책임 있는 논의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은 이전보다 탄핵안 통과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도 탄핵 논의 필요성을 인정했을 뿐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어서 실제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탄핵안 표결은 차기 대선과 이에 따른 정계개편 압력 등의 정치적 변수가 상당해 한치 앞을 장담할 수 없다. 일단 정국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 퇴진 요구와 탄핵 절차 추진을 병행한다는 입장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을 접촉해보고 의결정족수 (확보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與 법사위원장이 탄핵 주장하는 검사 역할
탄핵 정국에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하게 되면 국회의장은 지체 없이 소추의결서 정본을 국회 법사위원장에게 보내야 한다. 법사위원장이 이를 받는 순간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다. 이어 법사위원장이 이 소추의결서를 헌재에 제출하면 탄핵 절차가 개시된다.
법사위원장은 헌재 탄핵심판장에서 탄핵소추위원을 맡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검사 역할도 맡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한나라당 소속의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탄핵소추위원이었다.
문제는 이번에 탄핵안이 통과한다면 새누리당 소속 권성동 위원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여당인 권 위원장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권 위원장이 비박계이긴 하지만 지난 17일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이유로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법’의 법사위 통과를 반대했다는 점도 거론된다. 다만 권 위원장이 이날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 즉각 착수에 동의한 현역 의원 35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만큼 탄핵소추위원 역할을 외면하진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헌법재판관 6인 이상 찬성 있어야
헌재는 탄핵안이 제출되면 180일 이내에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이 내년 임기를 마치고 교체된다는 점이 중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내년 1월에 퇴임하는 박한철 헌재소장의 후임 인선 문제로 시간이 지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로 재판관으로 임명된 후 다시 소장으로 임명되는 과정을 밟으면 되지만, 소장 임명을 두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질 경우 탄핵심판 절차도 사실상 정지될 수 있다. 헌재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고, 재판관 임명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최악의 경우 7명의 재판관만으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재판관 구성이 보수 일색이라는 점도 변수다. 박 소장과 이 재판관을 제외한 7명의 재판관 대부분은 그간 보수적 법해석을 해왔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릴 때 김이수 재판관을 제외한 6명의 재판관이 시민사회 진영의 위헌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산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서둘러 새 재판관을 임명한다 하더라도 기울어진 균형추가 바로잡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 소장과 이 재판관은 각각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지명했던 만큼 후임 재판관도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지명하기 때문이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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