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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 “상처받은 아이들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을 때 ‘마더’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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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 “상처받은 아이들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을 때 ‘마더’ 만났죠”

입력
2018.03.2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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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서 진짜 엄마 된 이후에

아동 학대 뉴스 보면 매번 통곡

대본 접하고 단번에 출연 결심

엄마의 역할 새삼스레 깨달아

이보영은 “‘마더’를 촬영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며 “집에서 남편과 아이, 나 이렇게 셋이 뒹굴고 놀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니엘 에스떼 제공
이보영은 “‘마더’를 촬영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며 “집에서 남편과 아이, 나 이렇게 셋이 뒹굴고 놀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니엘 에스떼 제공

첫딸 지유를 출산하고 엄마가 된 어느 날. 배우 이보영(40)은 침대에 누워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게 거의 기절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2016년 새엄마의 학대로 숨진 신원영군 사건 때문이었다. 엄마가 된 이후 “아기들이 병으로 아프거나 학대받는 뉴스를 보면 매일 통곡”했다. 일명 ‘원영이 사건’을 뉴스로 접한 그날도 이보영은 혼절하다시피 한 채 울기만 했다. 엄마가 된 후 예전에는 몰랐던 세상의 아픔을 껴안게 됐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때 tvN 드라마 ‘마더’가 선물처럼 다가왔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이보영은 ‘마더’의 ‘마’자만 꺼내도 울먹였다. 마지막 장면의 촬영 당시를 설명할 때는 눈물을 쏟았다. “(촬영할 때)괴롭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어느 한순간도 감정이입이 안 된 적이 없었거든요. 다만 (아이들이 학대 받는) 현실과 연기 사이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몹시 아팠어요.”

‘마더’는 초등학교 과학교사로 일하는 수진(이보영)이 엄마로부터 학대받고 버려진 아이 혜나(허율)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수진은 혜나를 데리고 떠나고, 혜나의 엄마가 된다. 이보영은 ‘마더’의 첫 대본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초고로 나온 1회부터 9회까지 대본을 단번에 읽었다. 덜컥 “하겠다”며 제작진의 손을 잡았다. “남편(배우 지성)에게는 읽어보지 말라”고 했다. 남편의 마음까지 아플까 봐 걱정돼서였다. 하지만 지성도 천생 연기자.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1~4회 대본을 쭉 훑더니 “수진이와 혜나의 멜로네”라고 했단다.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나 도피행각을 벌이는 슬픈 사연을, 지성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에 빗대 해석했다. 이보영도 남편의 말에 공감했다. “수진이가 무조건 주는 사랑이 아니라 혜나로부터 받는 사랑이 더 컸다.” 남편의 조언대로 혜나를 아이로서만 대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이보영은 아역배우 허율과 눈빛을 마주하고, 교감을 나누며 그렇게 ‘마더’ 속 엄마가 됐다.

이보영(오른쪽)은 tvN 드라마 ‘마더’에서 엄마로부터 버림 받은 혜나를 데리고 떠나는 교사 수진을 연기했다. CJ E&M 제공
이보영(오른쪽)은 tvN 드라마 ‘마더’에서 엄마로부터 버림 받은 혜나를 데리고 떠나는 교사 수진을 연기했다. CJ E&M 제공

# 무색무취 연기 스타일 덕분에

시청자의 공감 얻은 것 같아

‘마더’에 출연하면서 이보영도 성장했다. 모성이라는 감정과 엄마의 역할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네 살인 지유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배웠다. ‘너는 내 아이니까 내 마음대로 키울 거야’라는 독선도 버렸다. “스스로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떠먹여주기 보다는 떠먹을 수 있도록, 세상에 부딪힐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키우고 싶다. 한때는 모성을 강조하는 사회구조에 화가 치밀기도 했단다. 산책을 나와 남편이 아이를 안고 있으면 “대단해” “착해” “(보영씨)결혼 잘했어” 등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아이를 안고 있거나 업으면 그런 말씀하시는 분이 없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깃든 “강요되는 모성”에 반감이 생겼다.

“모성이라는 게 강요한다고 발휘되는 건 아니에요. ‘마더’에서도 결혼한 적 없고 아이를 낳은 경험도 없는 수진이 모성을 드러내잖아요. 모성은 당연한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 같아요. ‘마더’를 통해 기른 정이 얼마나 애잔한지를 말하고 싶었어요.”

이보영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마더’는 회를 거듭할수록 엄마들의 가슴을 울리며 눈물을 쏟게 했다. 배우 영신(이혜영)의 세 딸 수진과 이진(전혜진), 현진(고보결)이 모두 친자식이 아니라는 막판 반전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더 먹먹하게 했다.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울지 않은 적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감상평이 적지 않았다.

결국 이보영의 선택은 이번에도 옳았다. SBS 드라마 ‘귓속말’(2017)과 ‘신의 선물-14일’(2014),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KBS 드라마 ‘내 딸 서영이’(2013) 등으로 다져온 연기의 틀이 ‘마더’를 통해 완성된 느낌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으며 ‘시청률의 여왕’이 된 것도 차분한 ‘무색무취 연기’ 덕분이다. 인기 비결을 물었다. “제게 감정이입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듯해요. 저를 자신들의 분신처럼 보시며 캐릭터에 쉽게 빠져드는 게 아닐까요? ‘내 딸 서영이’ 할 때는 팬레터가 많이 왔어요. 세상에 서영이들이 참 많더라고요(웃음).”

이보영은 “‘마더’ 촬영장에선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며 “김철규 PD님은 구석에서 우셨고, 나와 이혜영 선배님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CJ E&M 제공
이보영은 “‘마더’ 촬영장에선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며 “김철규 PD님은 구석에서 우셨고, 나와 이혜영 선배님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CJ E&M 제공

무채색 연기는 변화가 없다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이보영은 “굳이 애써서 연기 색깔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제가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 (감정이)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더 무뎌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변화해 가겠죠.”

이보영은 MBC 드라마 ‘애정만만세’(2011)에서 치아교정기에 뿔테안경을 쓰고, 뽀글거리는 헤어스타일로 등장해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애써서 바꾸려 해봤지만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는 힘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현실에 “감사”하다. 이보영은 대선배인 배우 원미경(58)을 떠올렸다. 원미경은 지금 이보영의 나이인 40세에 MBC 드라마 ‘아줌마’의 주인공을 맡았다. 억척스러운 아줌마 역할이었다. “원미경 선배님께서 당시 40세는 배우를 관둬야 하는 줄 아셨대요. 나이가 들수록 시나리오 선택 폭이 점점 좁아지니까요. 그래서 ‘아줌마’를 찍었다고 하셨어요. 저도 아마 10년 전 이 나이였으면 할 만한 역할이 없었을 거에요. ‘마더’ 같은 작품을 만난 건 시대를 잘 타고 났기 때문 아닐까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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