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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어보 환수, 한국 정부 설득이 더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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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어보 환수, 한국 정부 설득이 더 힘들었죠”

입력
2017.07.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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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硏 “불법반출 증거 없다” 뒷짐에

시민단체가 직접 美 박물관과 협상

정부, 조선왕실의궤 등 환수 때도 무관심

증거 찾아내도 무시… 환수 후엔 생색

문화재청 등 오만과 편견 내려놓길

“도와달라고 할 때는 코웃음 치더니, 이제서야 자신들 업적인 양 하는 게 너무 억울해요.”

6ㆍ25전쟁 당시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던 ‘문정왕후 어보(御寶)’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귀국한 다음날인 지난 3일. 문화재 환수 운동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구진영(31) 연구원은 경복궁 근처 사무실에 주저앉은 채 울었다. 60년을 훌쩍 넘겨서야 고향에 돌아온 어보를 보며, 누구보다 기뻐해야 했지만 구 연구원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간 노력에 대한 허무함, 그 노력을 아무도 몰라주는 서운함, 무엇보다 모든 공치사를 독점하는 정부를 바라보는 억울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구 연구원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눈치였다. 어보는 조선 명종 2년(1547년) 선왕이던 중종 계비 문정왕후에게 성렬대왕대비라는 존호를 바치면서 만든 의례용 도장.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09년 1월 미국 국립도서관에서 ‘한국에서 온 도장 47개 행방이 묘연하다. 왕실 문서에 사용하던 도장’이라는 국무부 문서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후 그 중 하나인 문정왕후 어보가 LA카운티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라는 사실을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알게 됐고, 어보가 미국으로 반출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런데 정부 태도는 미지근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박물관이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불법 반출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할 뿐이었다. 2011년 혜문 대표 등 단체가 미국 볼티모어 지역지 '볼티모어 선' 1953년 기사에서 어보가 미군 약탈 문화재라는 기록을 발견할 때까지 지원은 고사하고 무관심했다. 단체가 직접 LA카운티박물관을 상대해 2013년 “하루빨리 한국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 연락해주길 바란다”는 답변을 얻어낼 때까지도. 그래서 이번 반환은 온전히 문화재제자리찾기 등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 끝에 얻은 성과다. 하지만 구 연구원은 “어보가 한국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문화재청’ 같은 정부기관만 주목 받았다”고 토로했다.

구 연구원은 “정부의 무관심은 이번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 때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반출해 간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문제 제기를 2010년 할 때도 정부는 침묵했단다. 당시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오구라가 ‘직접 쓴’ 컬렉션 목록을 입수, ‘고종의 투구’ 등 34점이 도난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문화재청은 “자료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국제박물관협의회 중재 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요청에도 “그런 국제단체가 시민단체를 상대해주겠냐”고 무시했다는 게 구 연구원 얘기다. 결국 그 통로를 뚫은 것도 문화재제자리찾기다.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 47권’을 2006년에 받아낼 때도, 일본 궁내청이 가지고 있던 ‘조선왕실의궤’와 미국이 훔쳐간 ‘대한제국 국새’까지 돌려 받는 성과를 낼 때도, 정부는 사실상 침묵했다. 최근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 색상을 다시 연구해보겠다고 밝힌 것도, 사실은 2013년부터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인 다른 궁궐과 달리 현판 색깔이 반대”라는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이제서야 받아들인 것이라고 구 연구원은 꼬집었다.

요구는 간단하다. 바로 “오만과 편견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구 연구원은 “증거를 들이대도 ‘시민단체 주제에 뭘 알겠어’ 식으로 나온다면 문화재 연구는 그만큼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빼앗긴 문화재를 돌려받는데 정부기관과 싸우는 게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 정부보다 더 힘들었는데…” 곁에 있던 혜문 대표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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