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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엄마를 위한 장난감은 없다

입력
2016.12.0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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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을 고를 때 중요한 기준은 역시 아이가 얼마나 잘 가지고 노느냐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은 뜻이 더 있다. 그냥 잘 가지고 놀아서만은 안 된다. 엄마를 찾지 않고 ‘혼자서 오랫동안’ 가지고 놀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난감이다. 그래서 엄마들 사이에서는 ‘기적의 30분’과 같은 말이 있다. 어떤 장난감을 사줬더니 아이가 혼자서 30분 동안 잘 놀았을 때 그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30분은커녕 커피 한 잔의 자유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으니 장난감이 선사해주는 30분의 의미는 실로 크다.

나 역시 기적의 시간을 선사해주는 장난감을 찾기 위해 애써 왔다. 값비싼 장난감을 무한히 사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하나를 살 때 철저하게 검색하고 공부하는 편이었다. 우선 안전한지 살피고, 기왕이면 아이의 두뇌 계발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잠시라도 혼자서 조용히 가지고 놀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장난감을 골랐다. 갖가지 정보를 섭렵하고 또래 엄마들에게 묻기도 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최종 선택한 장난감 상자를 뜯을 때면 머릿속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아이가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오랜만에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고.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에게 기적의 시간이란 없었다. 처음 장난감을 개봉했을 때 아주 잠깐 혼자 노는 모습을 보여주던 아이는 금세 엄마 손을 잡아끌며 놀이에 동참할 것을 강요했다. 때로는 새 장난감을 꺼내자마자 나에게 어떻게 가지고 노는 거냐고 묻고, 알려달라고 조르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며 짜증도 낸다. 여유로운 시간은 사라지고 어느새 나는 그 장난감이 마치 나의 장난감인 것처럼 열심히 사용법을 숙지하고 아이에게 알려주고 또 함께 놀아준다. 분명 잘 가지고 노는 건 맞는데 이거 어쩐지 속은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몇 번은 내가 장난감을 잘못 골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거듭되자 깨달았다. 아, 엄마를 위한 장난감은 없구나.

지금 ‘기적의 장난감’을 검색 중인 엄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 경험상 엄마들이 100% 만족할 만한 기적의 장난감은 없다. 아이에게 최고의 장난감은 언제나 엄마이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것을 알려주고 재미난 짝꿍이 되어주며 양보도 잘해주고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멋지게 해결해주는 엄마가 아이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인 셈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값비싼 장난감을 사준다 한들 그 장난감을 잘 활용하려면 옆에서 같이 놀아주는 엄마가 필요하다. 장난감을 통해서 자유 시간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마는 이유다.

아들이 어느새 31개월에 들어섰다. 한 달만 지나면 네 살이다. 한동안 열을 내며 빠졌던 장난감 구매에 이제는 시큰둥해졌다. 돈을 들여서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느니 한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장난감을 꺼내서 엄마가 같이 놀아주면 아이는 마치 새 장난감을 받은 것 마냥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 가지고 논 물고기 스티커도 스케치북에 새롭게 바다를 그려주고 붙여 보자 말하면 신이 나서 다시 때서 붙인다. 굴러다니는 장난감 자동차를 한데 모아 자동차 마을을 만들자고 하면 아이는 장난감 블록을 가져와 집중해서 자동차 마을을 만든다. 새로운 물건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놀이가 아이에게는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손재주가 없어서 ‘엄마표 장난감’까지는 못 만들어주지만 집에 있는 장난감을 활용하여 노는 데에는 조금씩 도가 트여간다.

오랜만에 밀고 다니는 ‘장난감 붕붕카’를 꺼냈다. 내가 그 위에 올라타서 아이를 앞에 앉히고 태워주니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계속 태워달라고 조른다. 몇 번 태워주다 지쳐서 내가 “이제 혼자 타볼래” 하고 자동차에서 내려오자 아이는 타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엄마, 같이 타자” 하고 내 손을 잡아끈다.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끙, 하면서 일어나는데 아이가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더라”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역시 아이에게 제일 좋은 장난감은 엄마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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