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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법치(法治)에게 다시 묻기를

입력
2017.05.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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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가 출범하고 정치권에서 협치(協治)가 강조되고 있다. 협치라는 용어는 다소 생소하다. 쉽게 말해 일종의 협력적 파트너십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협치는 법의 지배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와도 맞닿아 있다. 법치는 시민에 의한 법의 수용을 기반으로 하며, 협치는 그 수용성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법대로 합시다.” 법치주의를 이처럼 간명하게 설명하는 표현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법대로 하자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법대로 하자는 상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법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 경우, 법을 잘 알아 법을 이용하는 경우 그리고 법을 잘 모르는 경우이다. 만약 법이 힘 있는 자의 것이라고 불신한다면 법은 더 이상 행동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법치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법이 신뢰를 잃은 경우이다.

좋은 입법을 위해서는 각기 다른 다양한 이익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이질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협치는 승자독식주의에 비해 균형에 보다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보다 좋은 법이 될 수 있는 조건이다. 결국 법대로 하자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법을 믿고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라면 그 법은 이익의 균형을 적절하게 조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법은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처럼 바뀌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불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좋은 법은 돌고 돌아 또 다시 협치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협치는 또 좋은 법을 만들면서 순환한다.

좋은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법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법은 모든 상황을 규율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니 법은 추상적인 단어로 채워지고 행정부가 만드는 규범들이 오히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국회가 자세한 법률을 만들기보다는 대통령령이나 부령으로 그 구체적 내용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 균형의 문제는 행정입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법의 해석과 적용에서도 고민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경우, 법이 가진 좋은 의도와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형법처럼 해석하고 운영한다면 그 법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행정기관 역시 균형적 시각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법의 마지막은 권리구제이자 제재이며 사법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2015년 OECD에서 발표한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총42개국 중 39위를 차지했다. 우리보다 신뢰도가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 칠레, 우크라이나 정도다. 법원과 검찰의 전관예우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법조비리 사건이 터질 때 마다 그 핵심에 있다. 법원의 관료화와 검찰의 정치화 그리고 그들만의 패밀리 문화는 신뢰받는 사법제도를 만들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법조분야의 이슈 중에서 법률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논의는 변호사 수와 업무영역에 대한 치열한 논의에 비해 초라하다.

과거의 축적은 현재이다. 축적의 시간을 거쳐 법치는 이제 국민들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면에서 국민들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국민들 스스로가 좋은 법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사회 곳곳의 균형을 찾기 위한 새 정부의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으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일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향후 우리 법치주의의 한 모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의 법치에 무엇을 축적할 것인가? 법치에게 다시 묻는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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