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블랙 필름으론 성공 못한다고? '매출 1조원 클럽' 넘보는 블랙팬서

알림

블랙 필름으론 성공 못한다고? '매출 1조원 클럽' 넘보는 블랙팬서

입력
2018.02.28 04:40
18면
0 0

개봉 2주째엔 역재 2위 등

이제껏 전세계 7500억원 매출

여성 영웅 앞세운 원더우먼과

보수적 할리우드에 변화 바람

美 인종차별 반작용도 한 몫

흑인 영웅 영화의 분기점

영화 ‘블랙팬서’에서 아프리카의 가상 국가 와칸다의 왕이기도 한 블랙팬서(채드윅 보스만)는 진취적이고 지적인 흑인 영웅으로 그려진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블랙팬서’에서 아프리카의 가상 국가 와칸다의 왕이기도 한 블랙팬서(채드윅 보스만)는 진취적이고 지적인 흑인 영웅으로 그려진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세운다.” 영화 ‘블랙팬서’에서 젊은 흑인 군주인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국제연합(유엔)에서 한 연설은 미국을 향한 일갈처럼 들린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멕시코 장벽’ 설치를 강행하며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치블랙팬서’ 문화 운동으로

‘흑인 영웅’이 세계 극장가를 흔들고 있다. 흥행집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14일 개봉한 ‘블랙팬서’는 26일 미국과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약 7억달러(약 7,54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개봉 2주째 매출은 1억800만달러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ㆍ1억4,900만달러)에 이어 할리우드 영화 역대 2위 기록이다. ‘타이타닉’(1997)과 ‘아바타’(2009) 등 극소수 영화에만 허락된 극장 매출 ‘10억달러(1조원) 클럽’ 가입까지 점쳐진다. “‘블랙팬서’가 다양한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닌 영웅이 될 수 있게 용기를 불어넣는다”(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란 입소문을 탄 덕분이다. ‘블랙팬서’는 국내에서도 26일까지 458만8,210명이 보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온라인에는 ‘#와치블랙팬서(#WatchBlackPanther)’란 해시태그 물결이 일고 있다. 흑인의 삶을 돌아보자는 문화 운동으로까지 번질 기세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 퇴임 이후 심해진 인종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블랙팬서’ 열풍을 낳았다”고 봤다. 아시아인 등 소수 인종 역할을 백인 배우가 차지하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처럼 미국 영화계 뿌리 깊은 인종 차별에 대한 반작용도 흥행몰이의 요인이다.

‘블랙팬서’의 흥행은 흑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해 흑인 문화를 다룬 영화는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영화업계 편견을 깼다. 흑인 감독이 연출한 ‘블랙 필름’은 철저히 비주류였다. 올해 82회를 맞이하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블랙 필름은 올해 ‘겟아웃’(2017)을 포함해 다섯 작품에 불과했다. 블랙 필름이 처음 작품상 후보가 된 때도 2010년(‘프레셔스’)이다. 이 해부터 작품상 후보작이 기존 5편에서 10편으로 늘면서 가능했다. ‘블랙팬서’는 아프리카 가상 국가인 와칸다를 배경으로 흑인의 문화적 본류와 고뇌를 내세운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마블)가 처음으로 선보인 흑인 영웅 영화이기도 하다.

‘블랙팬서’란 이름은 1960년대 미국 흑인 운동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블랙팬서’란 이름은 1960년대 미국 흑인 운동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더 많은 ‘블랙팬서’와 ‘원더우먼’을”

‘블랙팬서’의 흥행은 지난해 ‘원더우먼’의 상업적 성공을 잇는 것이라 의미가 더 남다르다. 흑인영웅과 여성 영웅을 앞세운 두 영화가 보수적인 할리우드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더 많은 ‘블랙팬서’와 ‘원더우먼’을 만들어달라”(존 피시언 미국극장주연합 회장)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아시아 혹은 라틴 영웅의 등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블랙팬서’는 “흑인 영웅 영화의 분기점”(워싱턴포스트)이 될 것이란 평가도 있다. 영화는 미국 흑인의 인권 수호 역사서로 불릴 만하다. 블랙팬서는 1960년대 미국 흑인 운동 단체 ‘블랙팬서당’과 연결된다. 백인의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무장까지 불사하며 과격한 흑인 운동을 이끈 조직이다. 영화는 1992년 오클랜드에서 출발한다. 92년은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기소된 백인 경찰들이 무죄 판결을 받아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폭동이 발생한 해다. 비폭력 온건파인 티찰라 부자와 급진파인 엔조부 부자는 세대를 이어 부족(흑인)이 나아갈 방향을 두고 대립한다. 이들의 갈등은 온건파 마틴 루서 킹과 강경파 맬컴 X의 대립으로 대변되는 미국 흑인 인권 운동사의 은유로 읽힌다. 흑인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는 주류 상업영화로는 드물게 아프리카 부족 문화를 생생하게 스크린에 옮겼다. ‘블랙팬서’의 제작진 90%는 흑인이다. ‘블랙팬서’가 흑인의, 흑인을 위한, 흑인에 의한 영화라 불리는 이유다.

쿠글러 감독이 그린 ‘흑인 국가’는 개방적이다. 와칸다는 백인 전사까지 보듬는다. 악당마저 명예를 중시한다. 악당 킬몽거(마이클 B. 조던)는 죽을 때도 흑인 운동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감독의 ‘용병술’도 의미심장하다. 감독의 전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2013)에서 백인 경찰에 의해 총을 맞고 숨진 흑인 청년(마이클 B. 조던)은 ‘블랙팬서’에서 인종차별로 찌든 세상을 뒤엎으려 한다. ‘문라이트’(2017)에서 흑인 소년 마약상으로 나온 알렉스 히버트는 ‘블랙팬서’에서 와칸다가 미국 흑인 빈민들에게 펼칠 복지의 수혜자로 등장한다.

내한해 한국 관객과 만난 영화 '블랙팬서'의 주인공 채드윅 보스만.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내한해 한국 관객과 만난 영화 '블랙팬서'의 주인공 채드윅 보스만.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채드윅 보스만, 흑인 아이콘의 등장

‘블랙팬서’의 주연배우 보스만은 이달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마블 영웅 중 최초다. 보스만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첫 흑인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영화 ‘42’)을 거쳐 미국 최초의 대법관 마셜(영화 ‘마셜’)로 살며 흑인의 주체성을 보여줬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블랙팬서’에서 유럽식 영어 발음을 선보여 유럽의 아프리카 지배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영민한 배우다.

보스만은 한국에선 무명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낯선 배우의 낯선 영웅 스토리가 관객들에 새로움을 줬다”며 “기존 질서를 깬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이 국내 현실과도 맞아떨어졌다”고 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