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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CG 급증... 배우들만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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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CG 급증... 배우들만 진땀

입력
2017.07.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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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종영한 tvN드라마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서 정연을 연기한 공승연이 가상의 슈퍼컴퓨터를 조작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화면 캡처
지난달 종영한 tvN드라마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서 정연을 연기한 공승연이 가상의 슈퍼컴퓨터를 조작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화면 캡처

“상상력만으로 연기하기 힘드네요.”

최근 타임슬립 등 판타지 장르가 안방극장을 점령하면서 “연기가 힘들다”는 배우들이 부쩍 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거나 미래 사회를 구현하는 장면이 많아지다 보니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하는 드라마가 넘쳐나고, 배우들 역시 “없는 데 있는 척”하는 연기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거의 매회 CG를 사용해 파격적인 영상으로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그렸던 MBC ‘태왕사신기’(2007)를 주축으로 안방극장도 영화계처럼 CG가 없이는 드라마를 완성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극에서조차 환하고 탐스러운 보름달을 표현하기 위해 CG는 일상화가 된 지 오래다. ‘도깨비’ ‘별에서 온 그대’ ‘푸른 바다의 전설’ ‘시크릿 가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오 나의 귀신님’ ‘힘쎈여자 도봉순’ ‘시카고 타자기’ 등 트렌디 드라마들도 판타지 소재를 가미해 CG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들이 ‘태왕사신기’와 비교해 CG 기술이 더 나아졌다는 인상은 강하지 않다. 얼마 전 종영한 tvN ‘써클: 이어진 두 세계’(‘써클’)도 2017년 현재와 2037년 미래를 번갈아 가며 12회를 이끌었지만 CG는 조악하기 그지 없었다. ‘한국형 SF드라마’라는 문구가 민망할 정도였다. 미래의 강력계 형사 김준혁(김강우)이 선글라스 형태의 장비를 쓰고 형사 반장과 대화를 나누거나 정연(공승연)이 눈 앞에 놓인 최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장면이 화면 속에서 어색할 뿐이었다.

‘써클’ 후속작으로 지난 3일 첫 방송된 ‘하백의 신부’도 CG가 빠질 수 없는 드라마다. 물의 신 하백(남주혁)이 인간 세계로 넘어와 정신과 의사 소아(신세경)을 만나 사랑을 키운다는 설정 자체가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CG로 인해 질타를 받는 건 예외가 아니다. 신들의 나라 수국을 재현하는데 있어 “어린이드라마 수준”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하백과 소아가 산 속에서 멧돼지에 쫓기는 모습도 실소를 자아낼 뿐 긴장감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신세경(왼쪽)과 남주혁이 tvN 드라마 ‘하백의 신부’에서 멧돼지에 쫓기는 연기를 펼쳤다. 화면 캡처
신세경(왼쪽)과 남주혁이 tvN 드라마 ‘하백의 신부’에서 멧돼지에 쫓기는 연기를 펼쳤다. 화면 캡처

한국 방송계의 여건상 사전제작이 어려운 상황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나마 ‘태왕사신기’는 사전제작 드라마였지만, 최근 이어진 드라마들은 그날 촬영해 그날 방영하는 ‘생방송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열악한 제작 환경을 모를 리 없는 시청자들에게 “CG는 부족해도 스토리가 튼튼하니 이해해달라”고 대놓고 말하는 제작진이 많은 이유다. ‘태양사신기’ 이후 1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드라마 제작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CG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영화처럼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카메라 위치나 배우의 동선 등을 맞춰보는 게 아니라 거의 즉석에서 즉흥 연기를 해야 한다. 그저 연출자의 지시나 조언을 듣고 상상만으로 연기를 펼치는 셈이다.

‘써클’에 출연했던 김강우는 “CG 연기를 소화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며 “그렇다고 CG가 약하니 감안해서 봐달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얘기다. 우리가 그 틈을 메우는 수밖에 없다고 (배우들끼리) 얘기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그는 ‘써클’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눈에 안 보이는 데 보이는 척하는, CG를 고려한 연기”라고 되돌아봤다.

김강우는 tvN 드라마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서 2037년 미래의 형사를 연기했다. 화면 캡처
김강우는 tvN 드라마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서 2037년 미래의 형사를 연기했다. 화면 캡처

‘하백의 신부’의 신세경도 “신과 함께 펼치는 연기가 많다 보니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다”며 “CG로 만들어지는 장면들로 혼자 연기를 하는 게 많아 상상한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카메라 위치와 배우의 동선 등을 철저하게 사전 준비해 촬영에 돌입하는 영화와 달리 편성이 잡히자마자 촬영에 돌입하는 드라마는 배우의 즉흥 연기에 매달리기 일쑤다. CG를 감안한 가상 연기를 배우들의 ‘감’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한 방송사의 드라마 PD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드라마의 콘텐츠는 날로 발전하는데 화면 속 연출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위해선 사전 준비 단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판타지 사극에 출연한 한 남자배우도 “CG 연기를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액션연기를 위해 액션 스쿨에 다니며 무술을 연마하는 작업과 같다고 했다. 몇 개월씩 무술을 배워 작품 속에서 어색하지 않게 연기하는 것처럼 가상 연기도 훈련을 통해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 하반기도 판타지 장르가 대거 전파를 탈 예정이다. 일주일 뒤 예고된 결혼식을 막으려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KBS2 새 수목극 ‘맨홀- 이상한 나라의 필’(8월 9일 방영), 같은 해에 태어난 18세 소년과 31세 여자의 판타지 로맨스인 SBS 새 수목극 ‘다시 만난 세계’(19일 방송), 조선의 한의사와 서울의 외과 의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펼치는 tvN 새 주말극 ‘명불허전’(8월 방영), 사고를 미리 꿈으로 볼 수 있는 여자와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검사의 이야기를 그린 SBS 새 수목극 ‘당신이 잠든 사이에’(9월 방영) 등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하지만 녹록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배우들의 어깨는 날로 무거워질 전망이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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