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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합격선 변수 많아.. 점수에만 얽매이면 평생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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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합격선 변수 많아.. 점수에만 얽매이면 평생 후회”

입력
2016.12.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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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대변인 박재원이 간다]

<7>이석록 외대 입학사정관실장

모의지원 컨설팅 맹신은 곤란

결과분석하면 예측 절반은 어긋나

대학이 공개한 입시 자료 참고를

점수 딱 맞추려는 심리는 독

높거나 모자라면 아쉬워 방황도

융^복합전공 등 미래 보고 지원을

이석록 한국외국어대 입학사정관실장은 26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을 만나 "자기 진로 고민을 대학 진학 뒤로 미루고 무작정 명문대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점수를 응시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후회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이석록 한국외국어대 입학사정관실장은 26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을 만나 "자기 진로 고민을 대학 진학 뒤로 미루고 무작정 명문대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점수를 응시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후회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ssshin@hankookilbo.com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난감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로 합격 가능성을 판단해 달라는 요청들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 입시 컨설팅에서 손을 뗀 나에게까지 묻는 부모 마음이 안타깝기만 한다. 인터뷰 주제를 고민하다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31일 시작)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뒤늦게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마음으로 26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로 이석록(58) 한국외대 입학사정관실장을 찾아갔다.

합격선 예측이 가능한 일일까

_당장 지원을 해야 하는데 업체 간 컨설팅 결과가 서로 다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컨설팅 업체에서는 자신들의 예측이 맞다고 수험생들이 믿어줘야 하기 때문에 나름 그럴듯한 근거자료를 만들어 포장하는데 사실 신뢰할 만한 내용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는 학부모님들 처지에서는 몇 개 기관에 모의지원을 해놓고 합격 예측 쪽이 많이 나오면 가능성이 크다는 식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죠. 그게 트렌드가 된 것 같습니다. 모의지원 서비스 결과는 얼마나 많은 지원자가 자신의 성적을 입력했느냐에 따라 합격선 점수가 정해지는 메커니즘입니다. 맹신해서는 곤란하죠. 합격 안정권 점수를 실제 점수보다 10점 정도 낮게 잡아 빈축을 사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입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워낙 많아서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관별 차이가 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학이 가지고 있는 자료와 비교해 보면 상당 부분 차이가 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설 기관의 컨설팅 결과가 개략적인 합격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는 필요할지 모르지만, 가장 참고할 만한 자료는 대학이 발표한 몇 년 간의 입시 결과입니다. 그 성적을 토대로 올해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 변수를 고려해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최종 판단의 근거가 되는 몇 가지 변수는 뭘까? 애매한 답을 들었지만 다른 방향의 질문을 하게 된다.

_매년 입시 결과를 예측치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맞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반 정도 될까…. 진짜 너무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요. 사설 컨설팅 업체의 배치 기준표 상으로는 최상위 인기학과인데 실제 합격선을 보니 최하위 비인기학과와 비슷하게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독일어교육과나 프랑스어교육과 같은 경우 갑자기 경쟁률이 높아져 추가 합격자를 발표해도 합격선이 떨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해요. 작년에 비해 경쟁률이 극단적으로 뚝 떨어졌는데도 합격선은 올라가는 경우도 있고요. 반대로 경쟁률이 떨어지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 예를 들어 최초 합격자까지는 합격선이 꽤 높았는데 추가 합격자를 뽑으면서 합격선이 갑자기 뚝뚝 떨어지는 사례들도 있어요.”

뭔가 확실한 답과는 더 멀어진 듯한 답변을 듣고 있었지만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사정이 이런데도 확실한 답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신이거나 사기꾼이다).

_과연 합격선 예측이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우리나라 입시는 누가 이야기하듯 정말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복잡미묘한 변수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예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수시 합격으로 몇 %가 정시에서 빠져나갔는지, 최상위권에서인지 중상위권에서인지 등을 알려주는 데이터가 없잖아요. 교육청에서 고등학교별로 선생님들이 자료를 수집해 우리 학교에서 이 정도 빠졌기 때문에 자연계는 어떻고 인문계는 어떻고 하는 얘기를 해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 수능 과목을 선택해 반영하는 대학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국어 영어 수학 중에서 두 과목만 선택을 한다든지 하는 대학들 같은 경우에는 변수가 너무 크다는 거예요. 정말 자기들도 모르겠대요. 수능 백분위 성적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가 합격선이라고 추측했는데 이게 널뛰는 경우가 많고 한 해 걸러 반복되는 현상이 나오기도 하고요. 입시업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전문가가 입시설명회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도 변수죠. 온갖 돌발 변수들이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치열한 눈치작전이 올해 입시 결과에는 어떻게 작용할지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이석록 한국외국어대 입시사정관실은 26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을 만나 “자기 진로 고민을 대학 진학 뒤로 미루고 무작정 명문대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점수를 응시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후회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석록 한국외국어대 입시사정관실은 26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을 만나 “자기 진로 고민을 대학 진학 뒤로 미루고 무작정 명문대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점수를 응시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후회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점수 높아도 후회, 낮아도 후회

예측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싶은 심리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 들어 심란하다. 교육은 복잡계, 특히 현행 입시는 더 심한 복잡계라는 말이 변명처럼 떠오른다. 결국 최종 판단은 개인의 몫. 입시 결과가 나오고 결국 복잡계에서 벗어났을 때 그 복잡함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후회를 수험생들이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 물었다.

_지금 당장은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기로에 섭니다. 하지만 입시를 결과만으로 보지 않고 과정으로 볼 때 주의해야 점이 있지 않을까요?

“가장 심각한 게 ‘반수(半修)’인 거 같아요. 실제 비율을 정확하게 말씀 드리기는 어렵지만 10%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들이 최근 융ㆍ복합 교육을 지향하는 측면 때문에 대학에 입학해 전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진로와 전공에 대한 고민을 대학 진학 이후로 미루고 무작정 마구잡이로 명문대를 지원하는 사례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보면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도 문제가 있고, 자기가 원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아웃사이더로 겉돌다가 결국 반수를 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너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싶어 안타까워요. 또 자신의 점수에 딱 맞춰 지원하려는 심리 때문에 평생 족쇄를 차는 경우도 봅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예를 들어 합격에 충분한 점수보다 한 5점 정도 남은 거예요. 그러면 나는 더 좋은 상위권 대학을 갈수 있었는데 지원을 잘못했다는 후회가 되지 않겠어요? 거꾸로 5점 정도 모자랐어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억울하게 떨어졌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싫어지고 결국 방황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나타난다는 겁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뜨끔했다. 이석록 실장이 지적한 문제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입시 설명회와 컨설팅의 부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박판처럼 진행되는 입시 현실에서 입시업체들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예측력을 돋보이게 하는 데 몰두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학생의 미래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진학 이후 모두가 같은 대학 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에 비해 결과가 안 나왔다고 여기면 자포자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나태하기 짝이 없어요. 아무 개념 없이 살고 있는 이런 학생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학벌 전부 아냐… 대학 안에 길 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도 있다.

“최근 대학에서 강의 개설하는 것들을 보면 융ㆍ복합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아요. 문과ㆍ이과 통합 논의가 현재 이뤄지고 있죠. 그런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데 경영대학 학생들이 용인 캠퍼스까지 가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과대학을 이중으로 전공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란어과 학생인데도 경영 쪽을 공부해 사업에 성공한 경우도 봤습니다.”

명문대 프리미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대학의 이름에 목을 매는 경우와 자신의 진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석록 실장의 얘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은 무조건 수능을 다 못 보잖아요. 늘 아쉬움이 남는 거죠. 아이가 수능을 못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잘 본 모의고사 성적을 기억하고 있는 학부모님들이 너는 더 좋은 대학에 갈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재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재수 안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학벌 사회를 살아왔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모들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인식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재수를 염두에 두고 소신 지원 대신 맹목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이번에도 입시판은 왜곡될 게 뻔하다. 자신이 선택한 진로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마치 도박판에서 베팅하듯이 배치표의 윗부분을 노리는 눈치 작전은 이번에도 입시판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컨설팅 업체의 모의지원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허위로 성적을 입력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 마음은 합격ㆍ불합격 예측에 가 있겠지만 잠시 숨을 돌려 아이 마음 속의 지향점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전공 이름만 보지 말고 어떤 과목을 공부하고 어떤 교수를 만나는지 최소한의 정보만이라도 확인하다 보면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사설 기관보다는 공공기관의 자료를 더 신뢰하고 배치표 서열이 아니라 아이의 대학 생활, 20대의 삶을 더 중요한 지표로 삼아야 한다. 부모가 자기 심정보다 아이의 선택을 더 존중한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가장 큰 바람은 지금의 입시 판을 뒤엎고 새 판을 짜는 것이다. 초ㆍ중등 교육과정을 결산하고 고등교육 기관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합격선 위와 아래에 있는 학생의 운명이 달라지는 입시를 계속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입시를 치를 때마다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극심한 경쟁 심리를 유발하는 제도의 문제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고통만 남는 입시의 반복,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말이다.

추운 날씨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경쟁률을 확인하면서 고심해야 할 수험생과 학부모 여러분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부디 독감에 걸리지 마세요.

행복한공부연구소장

▦이석록 실장은

-한국외국어대 입학사정관실장

-1958년 충북 영동 출생

-한국외국어대 한국어교육과 학ㆍ석사 졸업, 박사과정 수료

-서울 화곡고 교사, EBS 언어 영역 및 논술 강사, 메가스터디 입시평가연구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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