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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욕먹어도 막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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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욕먹어도 막말하는 이유

입력
2016.02.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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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귀는 피곤하다. 하루가 멀게 나오는 정치인들의 막말 홍수 때문이다. 막말은 꼭 듣기에 상스러운 말이나 비속어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전혀 딴판인 현실인식을 말로 옮기거나, 무지와 교만함에서 비롯된 안하무인(眼下無人)격 발언들도 포함된다. 또 막말의 사전적 정의와 가장 부합하는 경우는, 당리당략(黨利黨略)만 좇다가 상대 정치인이나 특정 지역민을 인신공격하는 발언들이다.

정치인들은 왜 욕을 먹으면서도 막말을 할까. 국민들을 공분케 하거나 어이없게 만든 막말들을 유형별로 살펴보면서 원인을 탐구했다. 방대한 막말의 세계에서 대표주자들만 엄선했다.

1. ‘그들만의 리그’ 형

2월 3일 열린 새누리당 제20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 대회에서 만난 김무성(왼쪽부터) 대표, 조은비 예비후보, 김을동 최고위원. 조은비 페이스북
2월 3일 열린 새누리당 제20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 대회에서 만난 김무성(왼쪽부터) 대표, 조은비 예비후보, 김을동 최고위원. 조은비 페이스북

정치인들의 발상은 평범한 국민들의 눈높이와 사뭇 다를 때가 많다.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성차별적 발언이 대표적이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3일 열린 새누리당 제20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 대회에서 ‘여성 후보가 선거운동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여자가 너무 똑똑하게 굴면 밉상을 산다”며 “약간 모자란 듯 보여야 된다”고 답했다. 여성 정치를 논하는 자리에서 나온 얘기라 더 앞뒤가 안 맞아 보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새누리당 청년 대표를 자처한 조은비 예비후보(화성을)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청년문제와 노동법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머뭇거려, 김 최고위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민이 공감하기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단골 정치인으로 꼽힌다. 가장 최근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저출산대책특위 회의에서 “초저출산 문제는 국가 존망이 걸려 있다”면서 “독일이 터키 이민을 받아들였듯이 우리도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노조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불법 파업만 하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로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취업난과 관련해 한 발언을 꼽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국내에서만 일자리를 해결한다는 건 한계가 있다”며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에 갔다고 할 정도로 해외 취업에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는 공식 석상에서 스티브 잡스와 미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을 잇따라 자신과 ‘닮은꼴’로 언급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민이 생각하는 안철수와 스스로 생각하는 안철수 간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는 평도 있다.

2.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하지’ 형

2010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연평도 폭격현장을 찾아 보온병을 들어 살펴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10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연평도 폭격현장을 찾아 보온병을 들어 살펴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굳이 할 필요 없는 괜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4월 새정치민주연합이 개최한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에 참석한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며 “400명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발언 자체가 부족함을 드러냈다고 할 순 없다.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과 달리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국회의원 수가 평균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발언 이후 논란이 커지자 “퍼포먼스에 참여해 가볍게 한 것”이라며 “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나 말씀을 드리면 정책엑스포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돼 나중에 말씀드릴 것”이라고 얼버무리는 바람에 괜히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본전도 못 뽑은 꼴이 되고 말았다.

과거엔 메가톤급 자책골도 많았다. 2010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폭탄’발언이 가장 대표적이다. 안 전 대표는 북한의 포격 후 연평도를 방문해 폐허로 변한 민가를 둘러보던 중 쇠로 된 통 두 개를 발견하곤 취재진에게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를 수행하던 육군 중장 출신의 황진하 의원은 “작은 통은 76.1㎜ 같고, 큰 것은 122㎜ 방사포탄으로 보인다”고 친절히 부연했다. 하지만 이들이 포탄이라고 주장하던 쇠통은 보온병으로 밝혀졌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는 영화 ‘타짜’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이에 대적할 만한 사례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119 전화 논란’이다. 김 전 지사는 2011년 노인요양원 방문 과정에서 암 환자 이송체계를 문의하기 위해 119에 전화를 걸어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상황 근무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소방관은 “무슨 일 때문에 전화했느냐”고 누차 확인했지만 김 전 지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상대방의 이름을 묻기를 일고여덟 번이나 반복했다. 긴급 신고전화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내가 도지사라는데, 왜 이름을 말하지 않느냐’는 뿌리깊은 권위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2000년 16대 총선 부산 북 강서을 합동 연설에 나선 허태열(왼쪽), 노무현. 연설회영상 캡쳐
2000년 16대 총선 부산 북 강서을 합동 연설에 나선 허태열(왼쪽), 노무현. 연설회영상 캡쳐

3. 너 죽고 나 살자 형

상대 정치인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형 발언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최근에 크게 회자가 됐던 인물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지난해 4ㆍ29 재보궐 선거 결과를 두고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며, 사전에 사퇴 의사를 밝혔던 주승용 최고위원에 대해 공개 석상에서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것이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밖에도 정 의원은 비유와 직설을 넘나드는 거침없는 말들을 숱하게 쏟아내며 ‘막말의 달인’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 정 의원은 책을 통해 “나도 욕먹지 않고 살고 싶고, 우아하게 미사여구만 써서 말하고 싶다”면서도 “누군가는 이 왜곡되고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발언해야 한다. 바로 잡자고, 제대로 하자고, 그래서 내가 나선 것이다. 그 누군가가 되자고, 작정하고 각오하고 말이다. 나는 그저 이 세상 속에 치열하게 살 뿐이다”라고 자신의 거침없는 발언에 대한 변을 밝히기도 했다.

윤태곤 사단법인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2000년 16대 총선 유세 현장에서 당시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가 한 발언을 가장 인상 깊게 꼽았다.

당시 허 후보는 부산 북 강서을 유세 현장에서 “민주당은 전라도정권, 전라도 사람이 키우고 사랑하고, 반대로 우리 한나라당은 부산시민이 키웠고 부산시민이 사랑했습니다. 지금 살림살이 나아지신 분 계십니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저기 몇 분 계시네요. 혹시 전라도에서 오신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지역민을 폄훼하는 발언이었다. 윤 실장은 이 발언을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은 이유에 대해 “이 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패하고, 이 패배로 ‘바보 노무현’의 신화가 만들어졌다”며 “이 때 만들어진 ‘노사모’는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한 정치인의 막말이 나비효과가 돼 상대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의 막말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 실장은 “우리나라 정치는 진영논리가 강하기 때문”이라며 “전체 국민에게 비판 받는 발언이라도 지지층에 소구력이 있으면 당장엔 정치적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이철희 뉴파티위원회 위원장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정치인의 막말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그 사람의 심성이 문제가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지 못하니까 자꾸 거친 말로 승부하게 되는 것”이라며 정치인의 무능에 방점을 찍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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