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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문제와 정신의학(조두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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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문제와 정신의학(조두영 칼럼)

입력
1996.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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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에는 우리나라 심리학계에서 통일관계 학술대회를 열더니 지난주에는 한 대학 통일문제연구소가 「탈북자 심리적응문제」를 놓고 세미나를 열어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심리학과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민감한 남북대결과 통일문제에 중요한 참여자가 되었다.인간은 착하기도 하지만 잔인하기도 한 동물로서 유사이래 투쟁과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데, 그 까닭은 우리가 지니고 태어난 공격성 때문이다. 어린애도 가만히 보면 배고플 때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우성치듯 울어대며 젖꼭지를 물어뜯고 발버둥쳐 남을 때리고 심통부리고 반항하니, 이것이 바로 본능적 욕구의 하나인 공격성과 파괴욕 때문이다. 이런 욕구의 순화는 쉽지가 않다. 차츰 어른이 되면서 공격성을 자기 스스로에게 돌려 참아내고 삭여내야 하는데, 교육과 도덕의 힘을 빌려야 한다. 종교에서 강조하는 「내 탓이오」란 바로 이런 순화의 방법이다. 그리고 순화가 실패하는 경우 개인적으로 오는 것이 홧병과 대결이요, 집단적으로 오는 것이 전쟁이다.

인간은 입으로는 누구나 다 평화를 사랑한다 하지만 실은 그 못지 않게 싸우고도 싶어 한다. 우리는 의식에서 평화애호지만, 무의식에서는 전쟁애호일 경우가 뜻밖에도 퍽 많다. 왜냐? 전쟁은 우리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함이 없이 마음놓고 공격욕을 발산시킬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적과 우리 편, 선과 악을 간단명료하게 구분시켜주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토의에서 벗어난 우리 마음은 편하기 그지없다. 전쟁은 또 우리의 의존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즉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맡기면 상대가 다 알아서 우리를 먹여주고 입혀주니 그저 명령에만 따르면 되는 편한 세상이 온 것이다. 전쟁은 군중 속에서 고독했던 인간에게 소속감을 주니 뿌듯하고 게다가 잘 싸우면 훈장같은 것을 통해 우리에게 명예와 영광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테뉴, 칸트, 헤겔같은 철학자도 『사치, 이기심, 상업성, 부패가 충만한 긴 평화보다는 전쟁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군과 밀접한 관계

근대정신의학은 3가지 측면에서 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첫째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불안발작, 히스테리증세, 정신병발작, 신경성 심신조절불능같은 것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업무를 맡음에 있다. 전쟁에서는 팔다리만 부러지는 것이 아니다. 1·2차 세계대전에서 초기 3년간 양쪽 군대에서 후방병원 이송환자의 30%가 정신과환자였고 이들은 일단 후방으로 빠지면 병이 고질화하는데다 툭하면 집단소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다른 전상자들이 오히려 쫓겨날 판이었다. 그러다가 뒤에 사단마다 배치된 정신과 군의관 덕분으로 후송비율이 7%로 떨어졌던 것이다.

정신과가 개입하는 두번째 측면은 상대방 지도자에 대한 심리연구로서, 이를 토대로 좀 더 과학적인 전략을 짤 수가 있다. 첫번째 예가 미국 육군정보부의 요청으로 정신과의사인 랭거교수가 다른 세 명의 정신분석가와 함께 43년에 제출한 「히틀러의 심리」라는 극비보고서인데, 이들은 자료와 면접을 통해 히틀러가 지닌 늑대, 잘린 머리, 춘화에 대한 열광과 말, 세균, 달빛, 매독에 대한 공포등을 알아내는 등 마침내 「전사, 와병, 실각, 망명, 암살, 정신병이 아니라 자살로 끝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예측을 내렸던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갓 취임한 애송이 케네디대통령에게 노회한 흐루시초프와의 빈회담 승산비결을 체계적으로 준비시킨 백악관 자문 정신과팀이 있었고, 뒤에 케네디는 다시 이를 이용해 쿠바위기에서 끝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개인넘어 사회로

세번째 측면은 평화시와 전시 후방에서의 기여인데, 징병검사, 장교선발, 강병과 약병 소질자의 감별, 문제사병처리, 병과배치, 군기확립, 지휘관의 지휘자문, 훈련비법등이 여기 속한다.

우리 의과대학 시절에는 「군진정신의학」강의를 들어서 졸업할 때는 누구나 이 방면에 다소간 눈이 떠서 나갔었는데 십여년전부터 슬그머니 강의가 없어졌고 지금은 정신과 전문의 수련과정에서만 교육시킨다. 또 한때는 심리학 전공의 장교들이 있어 인성검사를 위시해 여러가지 심리검사법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최근 수년간은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도 군복무보다 시골 공중보건의사로 나가는 인원이 많은데, 남북긴장시기에는 국방당국이 예산을 늘려 이들을 군의관으로 더 많이 선발함이 국가적으로 이익일 것이다.

회원수가 2,000여명을 육박하는 정신의학회는 이제 키워 온 자체역량을 개개환자 진료차원을 넘어 사회를 위해 사용할 때가 된 듯하다.<서울대의대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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