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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갑질 너무해” 대나무숲 찾는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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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갑질 너무해” 대나무숲 찾는 직장인들

입력
2017.12.04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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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애 갖지 않게 조절하라네요”

“상사가 단톡방에서 ‘잤냐’ 물어요”

블라인드·페이스북 게시판 등 성황

직장갑질 119가 들춘 장기자랑 강요

성심병원 간호사들 1일 노조 결성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결혼한 경력 8년차 보육교사입니다. 어린이집 내 두 명의 교사가 임신을 하자 원장이 저한테는 ‘올해 아이가 생기면 안 된다, 내년에 가지도록 조절하라’며 사실상 임신 순번제를 요구하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네이트판 ‘회사생활’ 게시판)

“사회초년생 여자인데요. 상사의 성적 농담이 너무 심합니다. 팀원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소개팅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럼 잤어?’ 같은 수치스런 말을 밥 먹듯 합니다.” (페이스북 직장인 대나무숲)

익명의 공간에서 사내 갑질의 행태를 공유하고 위로하며 해법을 모색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근로 등 일터 환경은 열악하지만 직장 내 횡포를 해결할 공식적인 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탓이다.

3일 잡코리아에 따르면 직장 내 갑질 횡포는 직장인 10명 중 9명 가량(88.6%)이 경험할 정도로 심각하다. 하지만 사내에 목소리를 낼 통로는 마땅찮다. 감사팀에 제보를 하는 식의 대응은 자칫 본인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역풍을 부를 수 있다. 노조 조직률(2015년 기준 10.2%)도 세계 최저 수준이고, 근로감독관 1인당 1,500여개 사업장을 관리해야 하는 등 행정력도 열악하다.

때문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익명의 공간은 갑질을 폭로하고 서로 위로하는 ‘해우소’ 기능을 한다. 2013년 12월 등장한 익명 기반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는 회사 이메일 인증 체제로 가입한 각 회사 직원들을 위한 익명 게시판을 제공하고 있다. 2만6,00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이 앱에는 하루에도 2,000여개 글이 올라온다.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 ‘직장인 대나무숲’이나 ‘네이트판 회사생활’ 게시판 역시 사내 횡포를 폭로하는 글이 하루에도 20~30여건씩 쏟아진다. 특히 지난 1일 등장해 ‘성심병원 장기자랑’ 사건을 처음으로 폭로한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의 단체 오픈채팅방(익명)에는 하루 평균 700여명이 갑질 행태를 쏟아낸다. 박점규 직장갑질 119 스탭은 “최근 직원 80여명의 임금을 체불한 제주도의 유명 호텔에 대해 증거자료를 고용부에 제출했고 근로감독을 하기로 했다”며 “노조가 없던 성심병원 간호사들은 1일자로 노조를 결성했고, 곧 어린이집 교사나 방송작가 등을 위한 온라인 공간을 따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의 특성상 걸러지지 않은 일방적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네이트판에서 시작된 ‘현대카드 위촉사원 성폭행’ 사건은 제보자가 무고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부 익명을 가장해 특정인을 저격하는 등의 글은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직장갑질 119는 노무사, 변호사 등 241명의 노동전문가들이 관련 법률 상담과 함께 근로계약서 등 필요한 증거 수집을 하는 등 체계적 대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익명 공간이 늘어난다는 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민관이 함께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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