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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그 포도, 관심 없는데요

입력
2015.09.0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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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 세대를 넘어서 5포, 이제는 7포 세대다. 언젠가부터 ‘요즘 것들’은 그렇게 불린다.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3포, 인간관계와 주택을 추가하면 5포, 취업과 꿈을 끼얹으면 드래곤볼처럼 7포가 완성된다. 취업난과 낮은 임금, 높은 등록금 등 구조적 문제와 냉소주의 때문에 7가지나 포기한 세대. 포기를 죄악처럼 여겨온, 어른이 될 때까지 천 번의 흔들림을 견뎌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이 명명은 어딘가 미심쩍다.

이름 짓기는 타인을 정의하고 가시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동시에 개개인의 특성이나 선택, 배경과 맥락 대신 그 이름의 의미만 남긴다. 이 ‘7포 세대’가 청년을 멋대로 진단하는 딱지로 작동한다는 혐의는, 얼마 전 난데없이 ‘연애를 포기한 이들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지목당해서 어리둥절행 급행열차를 탄 뒤로 더욱 뚜렷해졌다.

7포 세대라는 말은 현실이 얼마나 ‘시궁창’ 같은지 간결하게 압축하는 표현이다. 게다가 아주 간편하다. “어차피 원인은 7포 세대!”로 눙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항목이 7가지나 되니까 어지간한 현상은 다 설명할 수 있다.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아, 요즘 청년들이 사는 게 팍팍해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해서 그래!”, “혼자 밥 먹는 ‘혼밥족’이 늘어난다고? 아아, 연애와 인간관계를 포기한 7포 세대의 쓸쓸한 식탁이여!” (이쯤에서 뒷목 잡는 사람 있을 것이다.)

7포 세대는 연민의 대상이자, 처절한 시대의 자화상이고, 그런 자신을 자조하며 사소한 만족에 집착하는 타자로 환원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청년들의 모든 선택, 그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형상은 순전히 경제적 조건과 구조적 문제에 따르며, 취업난과 생활고가 해결되면 그들은 다시 이 7가지를 누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성실한 시민으로 돌아올 것이다.

부분은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편리하고 대표성을 담보하는 방식처럼 보이더라도, 삶의 다양한 면면을 은폐하고 나아가 왜곡하기 때문이다. 모든 ‘하지 않음’이 ‘포기’는 아니며, ‘하지 않음’은 포기와는 명백히 다른 정치성과 의의를 지닌다. 여전히 입 안에 침이 그득 고인 채 울타리 밖의 포도에 등을 돌리는 여우와, 애초에 포도는 쳐다보지도 않고 다른 것에 정신이 푹 팔려 노래하며 울타리를 지나는 여우와, 포도가 탐스럽고 먹음직한 것은 인정하지만 딱히 따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여우를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의 통계 바깥의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거기에 서 있다. 익히 진단하듯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포기한 사람, 어쩔 수 없이 소외된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는 ‘하지 않기로’ 선택하면서 연애와 결혼, 출산이 담보하는 삶을 거부한 사람이 있다. 삶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연속이며 그 개개의 선택들이 모여 개인의 삶을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의 것으로 이끈다. 누군가의 포도가, 누군가에게는 완전히 ‘아오안’, 안중에도 없는 것일 수 있다.

‘7포’가 세대의 정체성으로까지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많이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이고 암울한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명은 ‘당연히 해야 할 것’, ‘마땅히 노력해야 할 것’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원하는 것을 억지로 포기해야 하는 삶만큼이나 원치 않는 것을 강요 받는 삶은 불행하다. 누구나 한다고 해서, 그것이 보편적인 삶의 형식이라고 해서 따라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인간관계도, 무엇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자유’ 역시 있기 때문이다.

포기가 포도를 여전히 욕망하는 것이 당연한 대상으로 남겨둔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은 그 포도의 당위성을 해체하는 행위이다. 선택에는 언제나 ‘하지 않음’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것을 포기나 도피, 낙오로 해석하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자, 타인을 오해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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