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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브로콜리가 끔찍해? 좋아하는 음식은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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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브로콜리가 끔찍해? 좋아하는 음식은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입력
2017.12.08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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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초콜릿과 치킨을 좋아하도록 타고났을까. 비 윌슨은 ‘식습관의 인문학’에서 인간이 미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사회적 요인이 얼마나 깊이 개입하는지 밝히며 먹는 법을 적극적으로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초콜릿과 치킨을 좋아하도록 타고났을까. 비 윌슨은 ‘식습관의 인문학’에서 인간이 미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사회적 요인이 얼마나 깊이 개입하는지 밝히며 먹는 법을 적극적으로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식습관의 인문학

비 윌슨 지음ㆍ이충호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508쪽ㆍ2만원

모니터 속 사람이 식탁에 음식을 차린다. 햄버거 5개, 치킨 3마리, 한쪽 냄비엔 라면 5인분이 끓고 있다. 소위 말하는 ‘먹방’ BJ(Broadcast Jockeyㆍ인터넷 방송인)인 그는 시청자들과 채팅을 나누며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라면에 치즈를 넣고 치킨에 갈릭소스를 뿌려 먹는다. 후식으로 내온 케이크 위엔 생크림을 더 올려서 먹어달란 요청이 나온다. 그야말로 고삐가 풀리는 장면을 수만 명이 지켜본다.

우리는 음식과 불화한다. 음식을 좋아하고 많이 먹고 싶어하고 자제하기 힘들어 한다는 것까지는 대부분이 동의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음식과 불화하는지 명확히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별다른 노력 없이 음식과 건강하고 완벽한 관계를 유지할 거란 믿음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단순히 좋아한다는 이유로 괜찮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한다.

영국의 음식 작가이자 역사가인 비 윌슨은 저서 ‘식습관의 인문학’에서 음식과 인간의 위태로운 관계를 들춘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스로를 햄버거와 초콜릿의 포로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저자는 인간이 잡식동물임을 상기시킨다.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는 타고난 게 아니며 인간은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도록 미각을 조정할 수 있다. 아니 조정해야 한다.

“우리는 잡식동물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또 다른 결과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은 먹는 법은 숨쉬기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먹는 법은 학습을 통해 익혀야 한다. 아기에게 음식을 먹이는 부모는 음식에서 어떤 맛을 느끼도록 훈련하는 셈이다.”

달고 기름진 것에 대한 선호는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 것이란 통념과 달리 미각은 상당부분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달고 기름진 것에 대한 선호는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 것이란 통념과 달리 미각은 상당부분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의 말은 반감을 부른다. 치킨과 라면에 대한 애정은 이미 너무 깊어져 우리는 그 유착조차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유착의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을 발견하는 일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두 아들의 엄마로 힘겹게 식습관을 교정해온 저자는 말 안 듣는 아이 같은 독자들을 식탁 앞에 끌어 앉힌다. 그리고 마냥 사랑으로 점철돼있을 거라 믿었던 인간과 음식의 관계에 의심의 숨을 불어 넣는다.

저자가 아는 한 사람은 쓴 채소의 대명사인 방울다다기양배추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어느 크리스마스에 그의 부모가 그것을 네 조각으로 잘라 알약을 삼키듯이 씹지 말고 삼키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양배추와 그의 악연은 오로지 이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채소를 맛보기도 전에 싫어했다면 거기엔 사회적 요인이 있다.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채소를 먹는 친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이라면 ‘무릇’ 단 것에 집착해 부모 속을 썩이리라는 믿음이 아이들 사이에도 퍼져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때론 이상한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채소를 거부한다.

대를 올라가면 거기엔 부모와 방울다다기양배추의 관계가 있다. 부모는 양배추를 좋아하거나 싫어했을 것이다. 싫어해서 먹였다면 부모의 강박, 즉 ‘채소는 맛없지만 꼭 먹어야 해’가 아이에게 대물림됐을 것이다. 좋아해서 먹였다면 더 큰 문제다. 저자는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먹일 때 느끼는 “저속한 황홀감”에 대해 예리하게 짚는다.

그는 “내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볼 때마다 쿠키와 우유를 잔뜩 내놓으려는 충동에 사로잡히는 나를 발견”한다며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줄 때 느끼는 “영웅적 자부심”과 “부모로서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책이 밝히는 인간과 음식의 관계는 애증이란 말로도 부족할 만큼 복잡하고 미묘하다. 우리는 지나치게 매운 음식을 먹으며 마초적 기쁨을 느끼고, 인기 없는 음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는다. 다 먹을 수 없는 양의 음식 앞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게임 속 캐릭터에게 케이크를 먹임으로써 대리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기이하게 비틀린 관계를 건강하게 재정립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운명론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적 선호를 심오하고 의미 있는 자기 본질의 일부로 간주하는 태도”가 먹는 법을 다시 배우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이 말에 따르면 이른바 소울푸드도 지독한 편식의 한 결과일 수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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